아직은 조심스러운

- 어반스케치 그림 수업

by 김규인

하얀 도화지를 보면 설레면서도 막막하다. 연필로 조심스레 스케치를 한다. 틀리면 지우개로 쓱 지우면 그만이지만, 백색의 도화지에 선을 긋는 건 참으로 조심스럽다. 어반스케치는 그 위에 펜으로 한번 더 선을 긋는다. 그리고는 밑그림을 그렸던 연필 자국을 지우개로 모조리 다 지워버린다. 그러고는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을 한다.

오늘은 외국의 한 도시의 집을 그렸다. 기와지붕을 그리고 돌로 쌓인 울통 불퉁한 벽, 중앙에 위치한 창틀 위에는 꽃이 만발한 작은 화분이 놓여있었다. 나는 수채화 붓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선생님이 다가와 시범을 보여주고 나서야 붓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조심성이 많았다. 돌이 지나서도 걷지를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앉은 채로 손과 발을 이용해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다 명절날 사촌 언니, 오빠를 비롯해서 동갑내기 사촌 여섯 명이 이리저리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나는 그제야 일어나서 거의 뛰다시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으니, 무엇을 시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고민을 거듭하고서야 실행에 옮기다 보니 남들보다 한발 늦기 일쑤이다. 사실 이번 그림 강좌도 이년 전에 신청을 했다가 취소를 하고서 고민만 하다가 올 들어 과감하게 도전하게 되었다. 막상 시작하니 별거 아닌데, 왜 일이 고민을 했을까 싶다. 오히려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이 좋은 걸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 오로지 하얀 도화지와 선, 그 위에 얹히는 물감과 물 생각뿐이다. 자칫 한눈을 팔면 선 밖으로 삐져나오고, 물을 칠하고 망설이면 금방 말라서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이 힘들어진다. 딴짓하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첫날은 어찌나 집중을 했는지 어깨가 잔뜩 경직되어 다음날에 한쪽 어깨가 아플 지경이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은 건지, 잡념을 없애서 좋은 건지, 아니면 결과물이 생겨서 좋은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코에 봄바람 잔뜩 품고 팔레트와 붓 도화지가 든 가방을 메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여름 즈음에 여름 휴가지에서 쓱쓱 펜으로 긋고 거침없이 물감을 칠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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