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기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 가장 괴로운 순간에 대학생이 된 딸을 기억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선택은 달라졌을 겁니다."(pp.29-30)
김연수 작가의 단편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대체 아직 겪지 않은 일을 어떻게 기억한다는 말일까? 말 자체만 놓고 보면 모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연수 작가는 담담한 언어에 사유를 담아 독자를 설득시킨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99년으로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예언가들과 점술가들의 말에 솔깃해져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IMF가 터지고 나서 1998년도에 입학했을 때는 실감할 수 없었지만, 4년 후 졸업반이 되었을 때는 나 또한 불투명한 미래를 점쳐보기 위해 역술가를 찾았었다.
"당신이 선택한 것 중에 최고는 얻지 못하지만, 나머지 차선책 둘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역술가의 말이 정확한 미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메시지가 그 당시 내게 묘하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역술가가 내다본 희미한 미래가 현재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김연수 작가는 한 인간의 현재가 어떻게 미래와 연관이 있는 지를 말한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p.22)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계속 지는 한 다음번에 이길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워진다."( p.22) 덧붙였다. 카지노를 가본 자는 알 것이다. 다음번에는 이길 거라는 희망 때문에 연속 패를 하더라도 쉽사리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대학생인 작품 속 화자와 그의 여자친구는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삼촌을 통해 여자친구 엄마의 과거를 듣게 되면서 그 둘의 미래도 자연스레 바뀌게 된다. 여자친구 엄마는 미래가 없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 속 인물은 결국 미래를 먼저 경험하고 희망을 얻어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판매중지가 되자, 작가 본인은 정작 자신은 미래가 없다는 듯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책 속 본문의 대사처럼 그녀도 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미래를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딸이 성인이 된 모습을 보았더라면, 그녀의 과거도 달라졌을까?
우리는 끊임없이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어찌 보면 '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택들은 쌓여서 이 책의 제목처럼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생성한다. 이 책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연속된 실패 속에서도 미래가 분명히 온다는 것을 남녀 두 인물의 과거와 미래를 통해 또한 액자 형식의 소설을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너무 머나먼 미래까지도 필요 없다. 당장 내일 아침에 몇 시에 눈을 뜰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인가.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이 모든 일 조차도 결국엔 우리의 미래가 된다. 마치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이 책은 불안한 미래에 쫓기던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책장을 덮고 나의 평범한 미래를 살며시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