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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성 Apr 06. 2021

못 읽은 편지

 

모퉁이길 돌아서면

어느새 초겨울의 짧은 해가 저물고

달빛 부스러기 환한 강둑길 흔들림 속

남겨진 이야기 도란도란 내려앉는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잊었을 때도

계절은 어김없이 와 성큼 다가선다

바람은 급한 사연 품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부시시 눈 비비며 늑장 부리는 너

불어갈 바람의 흔적이라도 알고 있는 걸까    

이유 없이 나는 떠날 준비를 하며

뭔가 쏟아질 듯한 냉한 하늘 바라보다가

궁금하게 밀봉된 편지 한 통 앞에 머뭇거린다

문득 내 앞에 놓여 있던 길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사람들도 사라진다

기다리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마무리 짓지 못한 우리의 이별, 불을 지필 수 있다면

밟고 밟아 단단히 길이 된 땅에서도 다시 꽃 한 송이 피울 것이다

들판 위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나무도

한 계절 쌓인 사색 무더기만큼의 색깔을 가졌다

너와 나에겐 그 짙음만큼 못 다한 이야기가 맴돌았다    

이 겨울, 분명해질 수 있는 것은

새로 태어나기 전 아득함만큼의 고요이다

지난 기억을 담은 밀봉한 편지 앞에서 나는 머뭇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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