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성 Apr 01. 2021

흑백 사진 속의 가을

흑백사진 속의 가을 


늦가을 햇살이 아스팔트 찻길을 쓸고 지나갈 때  

플라타너스 나무가 어루만지는 골목 어귀는 

행인들의 서성이는 소리에 깨어난다

그 아래 익숙한 빨간 우체통도 기지개를 켠다    

나도 모르게 스쳐지나간 바람처럼 수신되지 못한 엽서

가을바람이 읽는 동안

의미 없는 수다처럼 바람에 뒹구는 낙엽 

저만치 가버린 계절의 뒷자락을 지우고 있다    

잎사귀를 다 떨구어낸 나무들의 생채기에 바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둔한 청각을 자극하며 떠오르면

잊었던 가슴앓이를 느끼는 나, 아직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까마득한 기억 너머 보낸 편지 회신 되지 않는 걸 보면 

너 또한 살아있음일 테고

흑백사진 속 단발머리의 너     

어느 망각된 시간 속에 꼭꼭 숨은 것이다     

햇살 몇 겹 내려앉은 오후 

어느 시간 속에 숨어있을 너를 찾다가

플라타너스 잎 수북수북 쌓인 골목길을 밟으며 

표정 없는 나는

편지에 미처 쓰지 못한 낱말들을 이리저리 주워 담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