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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Feb 11. 2024

도쿄 재즈 나잇

J와 B

도쿄에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나는 같은 재즈바를 세 번 방문했다. 처음엔 음악을 들으러, 두 번째에도 음악을 들으러, 세 번째에는 J를 만나러 갔다. 그곳을 처음 방문한 날 나는 오픈 시간에 맞춰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이른 목요일 저녁의 재즈바는 한산했다. 내가 J를 처음 본 날도 그날이었다. 그는 바로 내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앞자리엔 J, 왼쪽 옆엔 어떤 여자. 일면식도 없으면서 계속 눈길이 가는 사람. J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몇 마디를 나눈 건 옆자리의 여자였고, 알고 보니 그들은 연주자들이었다. 


좁디좁은 재즈바는 잼 세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손님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악기를 꺼내더니 앞으로 나가 연주를 시작했다. 악보도, 정해진 곡도 규칙도 없이 즉흥적으로.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직 음의 흐름에 맞춰하는 연주.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지만 연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손짓, 리듬 타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아 내 스타일로 생겼는데 연주도 잘하네. J, 그를 처음 본 날 한 생각이다. 


일요일. 두 번째 방문했던 날은 주말이라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좁고 좌석이 몇 없기에 모두가 다닥다닥 붙지 않으면 앉을 수 없는 그런. 왼쪽에 앉은 뉴질랜드에서 친구끼리 그룹으로 여행을 왔다는 한 아저씨는 계속 말을 걸었다. 좀 성가실 정도로. 그때 한 여자가 우리 사이에 양해를 구하고 앉았다. 일본 사람이었다. 그냥 이곳의 분위기가 으레 그렇듯이 우린 가벼운 스몰톡을 주고받았고 나는 그녀가 휴학생이라는 것도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수역 근처에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B)와 이야기를 나눌 때 B에게 아는 척을 하는 J를 보고 ]

나: 오, 너 저 사람이랑 친구야? 나 며칠 전에도 봤어. 연주 잘하더라. 

B: 오 진짜? 우리 친구야! 


우연인지 뭔지 그녀는 J의 가까운 친구였다. 연주를 쉬는 잠깐 사이 J가 우리 쪽으로 왔고 우리는 안면을 텄다. 


나: お名前は?(이름이..?)

J: J. 너는?

나: 리아. 

J: 재즈 좋아해? 무슨 음악 좋아해?  

나: 재즈 좋아해. 제일 좋아하는 건 인디음악. 밴드 음악 좋아해. 너 이 밴드 알아? Yogee New Waves라고 일본 인디 밴드인데...

J: 알아. 최근에 나온 이 노래 들어봐 되게 좋아. 너 혁오 알아? 나 혁오 좋아해 DPR LIVE! 그 사람 음악도 좋아해. 

나: 혁오 알아 콘서트도 갔었어. Mitsume 알아? 

J: 들어봤어. 너 인스타 아이디 물어봐도 돼?

나: 응 내 아이디는... 


J는 짧은 대화 끝에 다시 연주를 하러 나갔고, 내 머릿속은 들뜸을 가라앉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길이 계속 갔던 사람과 얼떨결에 친구가 됐으니까. 나는 B에게 내가 J에 대해 했던 생각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침착하게 연주에 집중하는 척했다. 그런 내게 B가 당황스러운 말을 건넸다. 


B: J한테 데이트 신청해 봐. Hang out 하자고.

나: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하지만 속으로 뭐지 J가 내 스타일인 거 들켰나 걱정하며) 왜? 난 쟤 안 지 얼마 안 됐는데...? 

B: 그냥~ 

나: (미심쩍은 마음으로) 둘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B: 음 롱 스토리인데... 

나: 말해봐. 괜찮으니까.

B: 사실 J는 내 ex야. 고등학교 때 사귀었어. 

나: (진짜 당황해서) 너 그러면 지금 네 ex한테 데이트 신청해 보라고 한 거야? 대체 왜?

B: I just wondering... (이 표현에서 나는 속으로 살짝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B가 나를 이용해서 J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B가 아직 J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 솔직히 말하자면, 쟤 내 스타일이긴 한데 별로 좋은 남자인 것 같진 않네. 

B: 너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J 주변엔 여자가 많아. 

나: (그냥 웃어넘기며) 일본에서는 ex랑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게 일반적인 일이니...?

B:  아니. 보통은 안 그래. 근데 우리는 매일 통화를 하고 어쩌고....


너 아직 J에게 마음이 있구나? B에게 솔직하게 한마디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냥 웃으며 넘겼다. 나는 어차피 여행자인데, 그런 나를 경계하는 B의 발언이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그리고 B의 발언과는 별개로 J는 몇 년 만에 나를 설레게 만든 사람이었다. 진지한 무언가를 바라기에는 석연치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왜 연주자의 길을 선택했는지, 연주를 하지 않을 땐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결국 마지막으로 J를 한번 더 만나게 되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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