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집 계약서의 세부 항목 중에는 눈이 오면 집 앞 눈을 치우는 것이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집주인 아저씨가 이사 올 때 그것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니 노파심에 따로 언급한 거라고 내 속으로 짐작해 봅니다.
그냥 적당히 잘 치우고 살면 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하는데, 남편의 생각은 다른가 봅니다.
눈이 내리면 군대에서 제설작업하는 느낌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눈을 치웁니다.
집안이나 그렇게 치울 것이지 하고 마누라는 맘속으로 내내 눈을 흘깁니다.
오늘 아침도 그런 아침이었습니다.
출근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눈을 쓸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속에서 슬슬 화가 올라옵니다. 문 밖에다 대고 "여덟 시 다 됐어. 얼른 가. 늦어."라고 말하니 "아직 괜찮아." 합니다. 이래저래 집안을 정리하다 밖을 보니 남편은 아직도 고군분투하며 눈을 쓸고 있습니다. 나는 참다못해 창문을 열고 "빨리 가!"라고 짜증 섞인 한마디를 뱉었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이 드는 건 1초도 안 되는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 한들 본인의 출근길은 본인이 더 잘 알겠지요. 내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은 건 나의 오만이었습니다. 설령 출근이 늦어진다 한들 본인이 난처한 상황을 겪고 나면 담부턴 안 그럴 텐데, 나는 왜 그 순간 그걸 참지 못하고 말하고 말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알아서 잘할 텐데 옆에서 괜한 잔소리를 늘어놔 일을 더 그르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내가 초6이었나 중 1 쯤의 일입니다.
매주일 교회를 가는 우리 가족은 아빠는 일찍 출발하고 오빠는 그다음에 혼자 가고 그리고 나는 예배 시간이 다 되어서야 엄마 차를 타고 갔습니다.
사춘기 었던 나는 괜스레 엄마에게 반항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늘 준비가 늦던 나를 두고 엄마가 차를 몰아 먼저 떠나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딸이 좀 늦게 나왔기로서니 딸을 버리고 먼저 가버리는 엄마 차를 보며 어이가 없고 속이 무척이나 상했던 날이었죠.
하지만 오늘이 되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아마 엄마는 그 순간이 오기까지 나에게 수 없이도 잔소리를 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걸 귓등으로 흘려 들었겠지요. 참고 참던 엄마는 아마도 마지막 초 강수를 둠으로써 딸에게 시간관념을 심어주고 싶었을까요?
아침부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마디 했다가 자기반성의 시간을 깊이 갖습니다. 심지어 저 먼 사춘기 때 기억까지 갑자기 떠올라 그때의 나도 반성해 봅니다.
그때의 나는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오늘의 나는 '괜찮다'는 남편 말을 안 들어서요.
나의 잘못을 반성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고통스럽기 그지없죠. 오늘의 반성이 지나고 나면 내일의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스스로에게 약속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