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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싸는 작가 Aug 21. 2018

아들! 엄마 좀 나갔다 올게.

그렇게 우리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1. 그렇게 우리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유치원에서 아들을 픽업한 뒤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장바구니에는 어김없이

1리터짜리 묶음 우유 두 개,

 라면 멀티팩 한 개, 만두 한 봉지, 콩나물 한 봉지, 과자 몇 봉지,

 세 줄짜리 요구르트 한 묶음, 양파 한 봉지, 파 한 단, 두부 한 모, 반찬거리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왜 항상 장을 본 날은 이렇게 지지리도 주차 운이 없는 걸까?’       

 



  아파트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구석에 겨우 주차를 한 뒤,

 투덜투덜하다 툭 튀어나온 입을 하마터면 차문으로 스매시할 뻔했다.

 힘들게 차에서 내려 낑낑거리며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걸어갔다.

 두 손에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양손에는 빨간 줄이 쫙쫙 그어져 있겠지.’     

     




 16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숫자판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중간 어디쯤이라도 엘리베이터가 제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내려오기만을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엘리베이터는 가벼운 몸짓으로 한번에 쑤욱 내려왔다.

 ‘땡’ 소리가 나며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 하나 없던 빈 엘리베이터 정면 거울에 비친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깨에는 아들의 유치원 가방이, 

내 손에는 거대한 마트 봉지 두 개가, 

겨드랑이에는 금방이라도 미끄럼틀 위에서 아래로 점프하며 

겨드랑이 사이로 흘러내릴 것 같은 말썽꾸러기 얼굴을 하고 있는 클러치까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너 지금 뭐하니?’







     띠띠띠띠띠 띠리릭 철컹.  





손이 없는 나대신 아들은

 현관문 도어 록을 열어 주었다.

 아, 드디어 집이다. 

아끼는 구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툭툭 차 벗어 던지고, 

두 손 가득 마트 봉지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어깨에 걸린 아들 유치원 가방도 풀린 팔찌마냥 내 팔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땀 맺힌 겨드랑이에 딱 달라붙어 있던 클러치도

 내동댕이쳐졌다. 

클러치 안에 새로 산 콤팩트의 안위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냉동 만두와 우유를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벌러덩 침대로 번지 점프를 했다. 



      보이지도 않는 강바닥 아래로 끝없이 하강하는 기분이었다.

내 다리에 묶여진 이 로프는 과연 어딘가에 묶여 있는 것일까?

 이대로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강바닥 같은 침대는 나를 완전히 삼키고 있었다.                                          






   ‘나 ......이제 뻔뻔해져야겠어.’        





다음 날 아침,

 유치원 등원 시간.

 아들은 언제나 그렇듯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나는

 차 키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따라나섰다.   


 

      “엄마. 내 가방은요?” 


    “어?”   



       “유치원 가방이 없는데요.”  



   “그 가방 누구 가방이지?”  



   “내 거죠.”  



   “그럼, 이제 아드님이 챙기세요. 

엄마는 엄마 가방 너는 네 가방. 오케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으로 뻔뻔한 엄마가 되어 아들 앞에 섰다.

 나도 살짝 긴장이 되었지만 

세 보이려는 마음으로 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굳건한 입술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메고 나왔다. 

뭔가 엄마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한 느낌이었나 보다. 

혹시나 내 눈의 의연함을 보았나?





 ‘아 모르겠고…… 난 슈퍼우먼이 아니다. 

네 가방은 네가 들어라.

 들기 싫으면 버려.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그날을 시작으로 아들은 유치원 가방을 내 도움 없이 메고 다녔다.

 아들은 나의 과도한 친절을 의무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어느 날 장을 보고 난 뒤.     

 나는 차에서 내리면서 쭐레쭐레 

아파트 입구로 양손 편하게 걸어가는 아들을 

불러 세웠다. 




“아들, 

오늘 산 거 이것들 엄마가 혼자 다 먹는 거야?” 



    “아니지.”   



  “너도 먹을 거야?”



     “당연하지.”   



  “그럼 너도 당연히 도와야 하지 않겠니?” 



    “맞아.” 



    “너 가방 몇 개 들었어?” 



    “한 개.” 


    “엄마는 몇 개 들고 있지?”



     “세 개.” 



    “엄마는 세 개고 너는 하나야.

 엄마가 너에게 선택권을 줄게.

 엄마 가방을 들래?

       장바구니를 들래?”    






           아들은 내 겨드랑이에 꽂혀 있던 클러치 백을 뺏어 들고 앞장을 섰다. 

자기 눈에도 그게 제일 가벼워 보였나 보다.





.      그렇게 우리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다음주 화요일 2화 연재 합니다. ^^

똥싸는 작가 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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