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Aug 08. 2023

청설모 레스토랑을 열거야

낯선 고기에서 잣향기를 느꼈다

프리즈 마스터를 보러 Regent's Park에 놀러 나온 청설모 copyright(c) 2013 All rights reserved

 고백하건대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야생동물을 잡아 요리하는 헌트쿡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월드컵에서 남아공 팀의 리에종을 맡아 통역과 수행 등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국가대표팀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왔고 팀닥터 (Team Physician)께서 귀국하자마자 감사했다며 거한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건데 항공권을 보내줄 테니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패기 넘치는 청춘에 6대주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입출국도장 모으는 것에 혈안이던 때라 욕심이 났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프리카를 다녀오겠냐며 가자하셨고, 아버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납치라도 될까 걱정이니 가지 말라는 입장이셨습니다. 결국 국제전화를 수차례 하고 런던에서 유학한 팀닥터의 신분조회까지 마친 후 안심하고 온 가족이 남아공으로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프레토리아 세 개 도시를 이동하고 한 달 정도 머물며 토속음식과 전통요리를 먹었습니다. 그때 처음 먹었던 동물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산토끼, 거북, 임팔라, 칠면조, 타조 등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에 소식을 하며 육식을 내려놓았습니다. 아직도 뱃속에서 우당탕탕 동물들이 뛰어노는 듯 최상위 포식자의 아포칼립스가 느껴집니다. 

런던에서 야외 조각전을 둘러보고 클라이언트와 함께 청설모 갈비를 먹었습니다 copyright(c) 2013 All rights reserved

 어쩌다 보니 출장 중 영국에서도, 핀란드에서도 야생동물을 요리해 주는 레스토랑에 초대받아 몇 번 더 갔습니다. 뭐랄까요... 대량 사육되는 가축과는 다른 자유로운 맛이 있습니다. 아트컬렉터분들이 대부분 자본에서 자유롭다 보니 평범한 일상으로는 무료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저를 불쌍히 여겨 자신들의 특권을 과시하려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낯선 이방인인 제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그들도 괴로워하니 만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이 처음 알려준 어씽 (earthing)은 마치 대자연과 키스하는 느낌이랄까요. 몸이 여기저기 아플 땐 맨발로 춤을 추면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내년 부르키나파소 (Burkina Faso)와 코트디부아르 (Côte d'Ivoire)로 예술인 친구들과 서아프리카 댄스트립을 갈 단체 스케줄이 잡혀 벌써부터 설레고 있습니다. 잊고 있었던 디제잉과 불어회화를 열심히 연습해야 할 것 같네요. 

서울에서는 대모산에 가곤 합니다. 맨발로 습기 먹은 대지를 걷다 보면 쿠션이 든 신발보다도 편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원래 인간에게 맨발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편두통도 없어지고 꿀잠 예약이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맨발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산책로 관리는 잘 되어 있지만 혹시 유리조각이 있을지 모르니 파상풍주사는 맞으시길 권장합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엔 절대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운동화를 신고 하산하길 추천합니다. 양볼이 빵빵하게 먹이를 물고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 다람쥐를 보며 도토리묵무침이나 묵사발이 먹고 싶어 충동적으로 저녁메뉴를 정하기도 합니다. 등산 후에는 건강식이 어울릴 것 같으니까요. 

청설모를 그려봤는데 다람쥐스럽게도 별 것 없습니다 copyright(c) 2023 All rights reserved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팔딱 팔딱팔딱 날도 참말 좋구나

-김영일 작사, 박재훈 작곡


 청설모와 다람쥐가 비슷해 처음에는 헷갈릴 겁니다. 다람쥐 과에 속하는 동물들이지만 청설모는 덩치가 좀 큽니다. 일단 두 친구들은 생활반경이 다릅니다. 청설모는 주로 나무를 타고 다니면서 열매가 익기 전에 인터셉트해 먹을 정도로 영악하지만, 다람쥐는 땅 위로 다니면서 떨어진 열매만을 주워 먹습니다. 청설모는 나뭇가지 구멍을 집으로 살고 다람쥐는 땅을 파고 삽니다. 다람쥐는 땅굴에서 겨울잠을 자는데 청설모는 길어진 털을 휘날리며 눈밭을 헤치고 겨울에도 날쌔게 돌아다닙니다. 만일 다람쥐와 청설모가 같이 먹이를 발견하고 붙으면 어떠냐고요? 이건 저커버그와 머스크처럼 체급이 다르겠지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느리고 소극적인 다람쥐가 공격적인 청설모에게 KO를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줄무늬 다람쥐가 청설모한테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는 사람도 안타깝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거 생태계 교란 야생동물 21종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블루길, 큰입배스, 미국가재 등)을 식량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국내외로 다양합니다. 설마 특이한 요리를 먹는다고 이상한 눈으로 보신다면 서운합니다.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수렵가능한 포유류 3종으로 멧돼지, 고라니, 청설모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전 05화 비둘기는 새대가리가 아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