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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법 앞에서 10화

법비(法匪)들의 천국

by 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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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대한민국에서 검찰·법원·경찰에 대한 신뢰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국민 정서가 아니라 사법기관의 구체적 판례와 결정이 반복적으로 불신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전 대통령에 대한 즉시항고 포기와 구속적부심 기각은 그 상징적 사례 중 하나였다. 대통령의 사법 처리 문제는 법 앞의 평등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지만, 많은 국민은 그 결정에서 법리보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 적용되는 흔적을 읽는다. 기각 자체보다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절차 아니었느냐”는 체념이 더 깊게 남았다. 반면, 며칠 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50시간 만에 석방된 사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문제를 노출시켰다. 혐의의 성격과 권력과의 인접성을 고려하면 다른 방식으로 수사가 충분히 진행될 여지가 있었음에도, 권력형 사건에 대한 사법적 접근이 얼마나 ‘신속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채, 사법 판단만 먼저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 불신을 더욱 쓰라리게 만드는 것은 정반대의 저울질이 일상에서는 참으로 가혹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작년 벌어진 이른바 ‘초코파이 기소 사건’은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송 중이던 택배기사가 휴식 시간에 관례대로 협력사 냉장고에서 1050원 상당의 초코파이와 커스터드를 꺼내 먹었다. 그런데 경찰은 택배기사의 음주운전 벌금 전과를 조회하고는,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자비하게 송치해 버렸다. 이미 벌금을 냈고 죗값을 치른 시민에 대한 경찰의 전형적이고 폭력적 행태였다. 살인을 하고 거액의 횡령을 하고 마약파티까지 하는 고위급 자제에게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밥 먹듯 기소유예를 하는 검찰들도 경찰의 기소의견을 원용해 아무 생각도 없이 절도라며 약식기소까지 해버렸다. 법의 문지기에 불과한 그들에게 일반 국민들은 같잖은 가축인지도 모른다. 법원 역시 유죄를 인정하며 권위를 앞세워 벌금형을 선고했다. 사회적 파장에 비해 지나칠 정도의 형사적 개입이 이뤄진 셈이다. 이 결정은 사법부의 형평성과 판단의 우선순위에 대해 국민적 조롱과 피로를 동시에 불러왔다.

뉴스에서 종종 다뤄지는 크고 작은 사례는 결과는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사법적 판단의 무게가 권력과의 거리, 사회적 위상, 기관의 체면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상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비슷한 사람이 CCTV에 찍혔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멀쩡한 부녀자를 범죄자로 모는가 하면, 진정을 하러 출석한 여성 피해자를 투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멀쩡한 고소장을 써서 온 민원인의 직업이나 연봉을 떠보면서 "경찰서에 오려거든 변호사를 통하라"며 법에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한다. 조서에 없는 소리를 적어놓거나 절차를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강도보다 유해하니 반드시 현장 녹취를 하며 주의를 요한다. 얻어먹을 것이 있는 정재계 인사들에게는 법리의 장벽이 높게 세워지고 속도전식 석방이 주어지며, 택배기사에게는 초코파이 하나가 범죄의 충분한 증거가 되는 현실이다. 국민은 이 법 앞의 불균형이 구조라고 느낀다.


검찰은 선택적 기소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법원은 법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지만, 판결은 누군가에게는 방패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낙인으로 작동한다. 경찰은 일상에서의 무능과 안일함으로 사법 과정의 전 단계에서 이미 밑바닥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 이 모든 불쾌한 경험들은 분노를 넘어서 냉소를 낳는다. 국민은 이제 “사법정의가 실종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냉정하게 따지면 “처음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법기관이 이 불신을 감정적 과잉으로 치부하는 순간, 법의 공적 정당성은 무너질 것이며 국가는 존속하기 힘들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전환이며, 선언이 아니라 작동이다. 사법기관이 스스로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최소한의 상식과 균형, 그리고 책임의 태도를 복원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민은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권력이 아니라 정의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필요할 뿐이다.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냉소는 구조적 불복종으로 전환될 것이다.


지난 3년 간의 고소고발을 통해 더 이상 대한민국의 법을 신뢰하지 않는다. 작년 뉴스와 국회 청문회에서도 잠시 떠들썩했던 '블라인드 협박 및 모욕' 글을 올린 경찰들은 잡히지 않고 7월 수사중지가 되었다. 회사명에 '경찰청'을 버젓이 달고 게시글과 여러 댓글을 쓴 여러 경찰들에 대해 수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발생 직후 6개월 이내에 충분히 영장을 청구해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경찰 내부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며 시간을 끌며 새로운 청장이 오길 기다린 듯 소극행정으로 일관했다. 'MZ X들', '견민', '바퀴벌레' 등 탄핵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들을 향한 적대적인 표현에 대해 피해자가 특정이 되지 않았다며, 판사는 끝내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도 해보고, 검찰청 구내식당에서 샐러드와 비빔밥도 만들어 먹고, 경찰청 참수리홀에도 가보며 스펙터클한 시간이었다. 법비 덕분에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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