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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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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Park Mar 19. 2019

암스테르담에서 코펜하겐으로

네덜란드에서 10개월가량의 워킹 홀리데이 생활을 마친 2월 말, 그동안 정들었던 암스테르담을 떠나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날이 다가왔다. 네덜란드 오기 전 영국에서 살았던 짐들과 네덜란드에 살면서 늘어난 짐들이 나의 마지막 주를 참 힘들게 했다. 집에 있던 캐리어 3개와 새로 사 온 캐리어까지 총 4개의 캐리어에 모든 짐을 넣겠다는 나의 집념에 버리고 또 버리고의 연속이었다. 엄청난 양의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짐들을 최대한 버리고 나서야 짐 싸는데 성공을 했다. 어차피 편도로 가는 거고, 거리가 가깝기도 했고, 마침 티켓팅을 할 당시 세일 기간이어서 스칸디나비아 항공 비즈니스 티켓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22kg짜리 가방을 2개 부칠 수 있었던 터라 2개의 가방에는 당장 필요한 겨울옷과 화장품 등 필요한 것들로 꽉꽉 채웠고, 나머지 2개의 가방에는 당장 필요가 없는 여름옷과 책 등을 채워 넣어 암스테르담 집에 놓고 왔다. 플랏 메이트인 알렉스와 드라고스에게 4월에 찾으러 올 테니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떠나는 날 아침, 최대한 깨끗하게 정리를 해놓고 맡겨둘 가방 두 개와 열쇠를 놓고 집을 나왔다. 늘 그렇듯 69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일출을 보며 공항으로 가는 기분이 참 묘했다.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아예 네덜란드를 떠나는 거니 말이다. 한국이나 호주같이 먼 곳이 아닌 고작 한 시간 거리의 덴마크로 떠나는 거지만, 그간 네덜란드에 정이 많이 들었는지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공항에는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체크인 & 백드롭 카운터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공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카운터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기다리니 카운터가 오픈해서 줄을 섰다. 제일 처음으로 작은 캐리어를 벨트에 올렸는데 17kg이 나왔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내 느낌상 작은 가방이나 큰 가방이나 둘 다 무거웠으니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안심하며 나머지 큰 가방을 올렸다.

42kg.

내가 숫자를 잘못 봤나 했다. 순간 아, 망했구나. 짐 더 이상 뺄 게 없는데 어떡하지? 추가 요금 내라고 하면 얼마나 내야 하는 걸까. 막 고민을 하고 있는데 직원은 그냥 가방이 좀 무겁네 하면서 heavy tag만 붙이길래, 가방 이렇게 무거운데 추가 요금 안내도 되는 거야? 괜찮은 거야?라고 물어봤더니 두 개 합친 무게로 보면 괜찮다면서 쿨하게 넘어가 줬다. 1개당 22kg x 2 여서 다 합쳐도 44kg이 맥시멈인데, 엄청 후하게 그냥 봐줬다. 비즈니스 자리가 여유로워서 그랬던 걸까? 비즈니스를 끊으니 시큐리티도 fast track으로 오랜 기다림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비즈니스를 타면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탑승 전 라운지 이용이 아닐까 싶다. 스칸디나비아 항공 비즈니스 승객은  Aspire Lounge 26이라는 쉥겐 국가 승객 전용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테이블과 편안해 보이는 소파들이 넉넉하게 있었다. 음식들의 가짓수는 많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화장실도 내부에 있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유럽에 살면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늘 짐을 바리바리 다 챙겨서 갔는데, 라운지라는 특수성에 짐도 그냥 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물론 아무도 내 짐에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늘 소지품을 챙겨 다니는 게 좋다. 그냥 놓고 가는 건 가져가세요- 하고 광고하는 꼴.



보딩 시간에 맞춰서 게이트 앞으로 갔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게이트가 있어서 많이 걷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스키폴 공항은 게이트 잘못 걸리면 15분도 넘게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처음 타본 스칸디나비아 항공은 북유럽 항공사답게 굉장히 깔끔했다. 비행기를 탑승하고 피곤했는지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는데, 딜레이 된다는 방송에 잠이 깨서 시계를 보니 20분이나 잤다. 20분 동안 꽤 깊게 잠들었는지, 자다 깨서는 정신이 멀쩡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핫 타월을 나눠주고, 수거해간 후 네모난 박스를 하나씩 줬다. 짧은 거리라 핫 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주는 게 어디인가 싶었다. 기내식을 나눠주고 빵도 나눠줬는데 종류가 다양해서 뭘 먹을까 고민을 잠시 했다. 무슨 빵인지 종류를 몰랐던 건 비밀. 기내식은, 뭐랄까, 이것이 바로 북유럽의 맛인가... 싶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었다. 감자, 호박, 그리고 파테? 같은 것이 함께 있었고 블랙 푸딩 크럼블과 링곤베리 소스가 있었으나 당최 어떻게 먹어야 제대로 먹는 건지 몰라서 그냥 대충 섞어 먹었다. 하지만 정말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음... 장거리 비행 비즈니스 음식은 괜찮겠지? 그중에 제일 맛있었던 건 단연코 빵이었다. 따끈따끈해서 좋았으나 버터가 없었던 게 아쉬웠다. 기내식 박스를 수거해 간 후, 후식으로 초콜릿을 줬다. 수제 초콜릿 느낌이 물씬 났다.



어느덧 보이기 시작한 코펜하겐 시내


암스테르담에서 코펜하겐까지는 약 한 시간 십 분 정도의 거리. 무려 20분이 넘게 딜레이가 됐지만, 예정시각보다 10분 일찍 도착을 했다. 가방도 무사히 두 개 다 도착을 했다. 아직까지는 내가 덴마크에 왔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쉥겐 국가끼리는 입국심사도 없으니 말이다.



시내까지 가는 티켓을 뭘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차피 오늘 뷰잉도 다녀야 하고 처음이니 관광도 할 겸

city pass 96 hours 짜리를 샀다. 가격은 250 dkk. 약 34유로였다. 네덜란드 뺨치게 (아니 더한) 비싼 교통비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네덜란드에서 살다와서 비싼 교통비는 어느 정도 적응됐다고 생각했는데 유로가 아닌 덴마크 화폐 단위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친절하게도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방법을 아주아주 자세하게 적어줘서 에어비앤비 숙소가 있는 Valby까지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올 수 있었다.



Spinderiet shopping centre


코펜하겐에 있는 에어비앤비 가격치고 정말 저렴해서 고른 것도 있긴 한데, 집의 위치가 정말 좋았다. 역 바로 옆 쇼핑몰에 있는 플랏이라니!



덴마크에서의 첫 커피, Espresso House에서 마신 아이스 라테


호스트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나는 호스트가 알려준 집 근처의 에스프레소 하우스로 갔다. 큰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 최선의 선택이었다. 꽤 따뜻했던 날씨 덕분에 아이스 라테를 시켰다. 스타벅스는 인터내셔널 기업이라 메뉴가 영어로 되어있는데, 에스프레소 하우스는 메뉴가 덴마크어로 써져있었다. 그렇다고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니 직원에게 영어 할 줄 아냐고 먼저 물어본 후 영어로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 만큼 영어를 아주 잘 하지만 예의상 한 번 물어봤다.



커피를 마시며 findroommate 사이트도 열심히 보고, 페이스북 코펜하겐 페이지도 열심히 보며 여기저기에 메시지를 보냈다. 일단 뷰잉 약속이 2개나 있었지만 그들이 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많이 뷰잉을 하고 싶었다. 물론 연락이 와야 뷰잉을 보러 갈 수 있는 거긴 하지만 말이다.



3박 4일 동안 지냈던 Valby의 에어비앤비



한참을 기다려 만난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인자해 보이는 덴마크 아주머니였다. 카페에 동양인이 나 하나여서 한 번에 알아본 것도 있겠지만, 나의 짐덩어리 두 개가 더욱더 나라는 걸 명확하게 했을 것이다. 나의 임시 숙소는 에스프레소 하우스 바로 건너편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건물 구조가 약간 특이해서 집 올라가는 길이 헷갈렸다. 방은 아주 약간 좁긴 했지만 사진으로 볼 때보다 더 좋았다. 내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은 내 방과 화장 실 뿐이지만,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거실과 주방, 발코니 그리고 호스트 방도 구경을 했다. 이 가격에 이런 집이라니. 나는 여행하러 온 게 아니니 센트럴은 아니어도 상관이 없어서 가격 저렴하고 역에서 집까지 최소 동선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은 건데 정말 잘 찾았다고 생각했다.



짐을 풀고 시간에 맞춰 첫 번째 뷰잉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첫 번째 뷰잉은 Frederiksberg 쪽에 있는 집이었다. 메트로 역에서 걸어서 8분 정도 걸리긴 했지만 주변 환경이 꽤 괜찮았다. 약속시간보다 아주 조금 일찍 도착해서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려는 찰나에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자가 네가 혹시 리사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했더니 알고 보니 내가 컨택한 커플 중 남자분이었다.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방은 넓고 깨끗한 게 사진과 똑같았다. 침대가 싱글 침대인 게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아쉬워할 처지가 아니다. 건물은 오래됐지만 집은 레노베이션을 했는지 전체적으로 깨끗함 그 자체였다. 화장실도 주방도 정말 깨끗했고, 세탁기도 집 안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관리를 잘 한 집이라는 게 느껴졌다. 뷰잉을 마치고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메시지를 엄청 많이 받았을 텐데 뷰잉에 초대받은 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남자분이 필리핀 분인데 한국에서 영어 가르친 적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초대받은 걸까. 여하튼 한국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대화는 의외로 잘 통했고 좋았다. 왜 3개월+possibly extend라고 썼냐고 물어봤더니, 괜히 6개월 혹은 1년 계약했다가 중간에 서로 안 맞아서 사이 틀어지는 것보다 3개월로 일단 정해놓고 살아보고 잘 맞으면 계속 같이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괜찮긴 했다. 외국인이랑 같이 사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내가 써놓은 프로필도 꼼꼼하게 읽어본 느낌이 확 들었다. 집도 메이트도 마음에 들었다. 첫 뷰잉이 이렇게 마음에 들 줄이야. 내일 낮에 뷰잉이 하나 더 있어서 내일 뷰잉 마치고 저녁에 다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공항 근처 Kastrup. 메트로 역에서 집까지 걸어서 10분 정도가 걸렸다. 집 바로 옆에 버스정류장이 있는걸 뷰잉 하고 나와서 알았다. 두 번째 집주인은 페이스북에서 찾은 곳이었다. 가격은 첫 번째 집보다 좀 더 저렴했다. 위치는 시내에서 한 15분 거리. 집주인은 중동에서 온 남자분이었다. 집주인과 테넌트 두 명이 사는 집이라고 했다. 이 집은 방과 창문이 엄청 넓고 커서 좋았으나, 화장실이 전형적인 덴마크 스타일 화장실이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좁았다. 전에 남자 둘만 살아서 그런지 주방은 약간 컨디션이 별로였다. 방 큰 거랑 가격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집주인이 남자에, 집주인과 둘만 살아야 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집주인은 사람은 참 좋아 보였으나. 일단은... 여기도 역시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인사를 뒤로하고 나왔다.



뷰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얼마 남아있지 않던 나의 폰 크레딧이 0원이 되어, 폰을 시계로만 보며 간신히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을 했다. 세븐일레븐에 프리페이드 심카드를 판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역 안 세븐일레븐에 들렸다. Lebara 심카드+탑업(아마 데이터 60gb인가.. 이게 최소였..) 해서 148 dkk를 결제했다. 약 20유로. 심카드 가격 뺀다면 데이터 요금은 네덜란드에 비해 정말 저렴! 물론 내가 네덜란드에서 보다폰을 써서 요금이 비쌌던 것 일수도 있지만. 탑업 하는 영수증도 전부 덴마크어로 쓰여있어서 당황했는데 친절하게도 직원이 액티베이트를 도와줬다. 제대로 됐는지 바로 4G가 뜨고 데이터 사용이 됐다. 덴마크 1일 차에 만난 덴마크 사람들은 참으로도 친절했다.



기내식 이후로 쫄쫄 굶어서 valby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버거킹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서 집으로 왔다. 생소한 덴마크어에, 헷갈리던 메트로, s train, 길 찾기 등등으로 기운이 쪽 빠졌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있었다. 첫날부터 뷰잉을 너무 힘들게 잡은 걸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조바심 나게 만드는 걸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참 고단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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