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그리운 친구들
공포스런 야간 자습 시간도 곧 익숙해졌다, 역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 또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찍소리로 내지 못하던 우리는 좀 익숙해지자 그 무서운 선생님에게 인정받으려는 아이, 몰래 숨어서 비아냥대는 아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다 가끔 얻어터지는 아이 등으로 나뉘어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여름 방학을 얼마 앞둔 그 날 저녁도 우리는 단 하나밖에 없는 선풍기를 차지한 선생님의 배려로 우린 난닝구 차림으로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시간이 돼 저녁을 먹고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던 차에 한참을 자리를 비우신 선생님께서 붉어진 얼굴로 돌아오셔서는 우리에게 가방을 싸라고 하셨다. 오늘 자습은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끝난 자습에 열광했다. 그리고 “왜요?”라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상을 밑에 층에 준비했다며 밑에 층으로 가자고 하셨다. 난 그 무식한 선생님이 너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동안의 무수한 욕과 폭력은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터프가이였구나 싶었다.
선생님을 모시고 밑에 층으로 내려갔다. 선생님이 우릴 데려간 곳은 도서관 옆에 있는 항상 큰 자물쇠로 잠겨있던 교실 세 칸 정도 크기의 공간이었다. 거기로 들어간 우리는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거기엔 조명 밑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아름다운 음식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있었다. 선생님은 그걸 우리에게 먹으라고 하셨다. 잘 훈련된 개들이 주인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음식에 달려들 듯 우린 돌격했고 과열 차게 먹었다. 정말 신났다. 어떤 음식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멧돼지 통구이는 확실히 기억한다. 통째로 구워진 자그마한 돼지가 다른 음식들을 압도할 만큼 징그러웠고 또 불쌍해 보였다. 물론 그 징그러움은 곧 내가 언제 이런 걸 먹어보나 하는 마음과 왕성한 식욕에 없어졌지만.
먹다 지칠 즈음 주위를 둘러봤다. 축하 화분 등으로 그럴싸하게 꾸며진 단상 위엔 ○○회 졸업 20주년 홈커밍데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식장 가운데는 얼마 못 가 더위에 지친 우리들의 등에 들어가는 장난감이 되었지만, 얼음 독수리와 호랑이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누군가 우리 학교는 졸업 후 20년이 지나야 동문회를 인정해 주는데 그래서 졸업 후 20년이 지난 선배들이 이렇게 학교로 모여 기념한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과 멋들어진 조각상, 21년 만의 동창회. 이 감동적인 것들에 영향을 받은 우린 우리도 20년 후 이 자리에서 모이자는 누군가의 즉흥 제안에 열광했고 다짐했다. 꼭 다시 오겠다고.
21년 만에 학교를 찾으며 선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서로를 보며 무슨 말을 했을까? 또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20년 전 자신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학교에서의 선언적인 동창회를 짧게 마치고 그들만의 추억과 졸업 이후 삶의 보따리를 풀기 위해 좀 더 흐트러질 수 있는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그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20년 전 서로의 모습을 떠올리고 조롱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 만에 찾아온 학교에서 숨쉬기도 힘든 더위에도 제대로 된 선풍기도 없이 공부하는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모임을 약속하며 열심히 살자고, 다음 모임에 꼭 나오라고, 이번 모임에 안 온 놈들 꼭 데리고 나오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헤어졌을 것이다.
졸업한 지 40년 가까이 돼 가지만 다시 모이자는 우리들의 약속을 난 자키지 못 했다. 이젠 연락도 끊겨 모임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예전보다 많이 풍족해졌지만 그만큼 과거가 더 그리워진 지금 나는 그 시절 그 공포 속에서 함께 땀 흘리고 즐거워했던 친구들이 그립다. 어쩌면 지금 동기들이 나를 그리워하며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쌍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