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답답하고 그려진 미래는 불안하고
고등학교 생활을 돌이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2학년 수학 선생님이 우리 앞에서 우신 것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1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학교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난 선생님이 당연히 담임을 맡으실 줄 알았다. 담당 과목이 수학이어서 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차분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담임을 맡지 못하셨다. 선생님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담임이 되지 못하자 우리는 학교에 찍혀서라고 제멋대로 단정했다. 그리고 우린 그 시절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선생님을 권력 앞에 희생된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냈고 또 그렇게 단정했다.
담임을 맡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문과반 수학을 계속 담당하셔서 수업 시간에는 뵐 수 있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결근해서 수학 시간에 꽤 여러 날 자습을 했다. 죽어도 학교에서 죽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런 때에 결근이라니….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고 선생님의 무책임을 욕하기 시작했다. 수학 시간 수업보다 자습을 좋아한 놈이 더 그런 것 같아 우스웠지만.
우리 중 정말 믿지 못할 만큼 정보력이 뛰어난 놈이 있어 곧 선생님께서 이혼하셨고 딸아이를 누가 키울 것이냐 문제로 괴로워하신다는 정보가 돌았다. 순식간에 우린 이혼의 이유를 창조해냈고 또 선생님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무책임을 침을 튀겨가며 말했던 아이는 인정 없는 냉혈한으로 몰렸다.
선생님이 다시 수업에 들어오시자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을 힘들지 않게 하려고, 어쩌면 선생님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 정말 찍소리 하나 내지 않고 선생님만 쳐다봤다.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인사를 받고 수업을 진행하셨지만 우리들의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태도 때문이었는지 곧 수업을 중단하시고 우리를 빤히 보시다가 갑자기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그리고는 우셨다. 물론 소리를 내거나 하진 않으셨지만 우시는 것은 분명했다. 우린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장면에 적잖이 당황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꽤 긴 시간이 흐르고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시 한 편을 칠판에 적고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누구의 어떤 내용의 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안개는 참 신비하다. 안개 속에 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모두 분위기에 압도돼 시의 내용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선생님께서 그 시를 인생의 어려움과 힘듦을 말하기 위해서 들려주셨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 시를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무지막지 감수성이 흘러넘쳤던 우리들의 짐작만 있을 뿐이다. 어린 제자들 앞에서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애써 숨기려 하시다 우시고 한 편의 시로 표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교육자로서 적절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은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아니 그 이후로도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동안 그 일을 잊고 지내다 마흔 살 무렵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 그려지는 미래에 대한 실망이 그 장면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시를 찾으려 애써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한 동정(?)의 마음으로 들었던 그 시를 지금 다시 듣는다면 그 시에 담긴 뜻을 좀 더 깊이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