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호박 사이

잘못된 성인식으로 저지른 일들

by 이동수

내 학창 시절의 즐거움은 학교에서보다는 하교 시간에 많았다. 하굣길을 함께 하며 각자의 집으로 빠지기 전까지 우리는 각종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지나가는 여자 아이들을 예쁘면 사과, 못 생겼으면 호박으로 평가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린 이런 거친 이분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의 품종별 가격 따라 예쁜 아이들을 ‘부사-홍옥-국광’ 사과로 나누었고 못 생긴 아이는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더 나누지 않고 그냥 모두 ‘호박’이라 했다. 지나가는 아이를 우리들 마음대로 평가한 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평가한 아이를 보는 눈이 없다느니, 때론 잘 알지도 모르는 황색 언어를 써가며 낄낄댔다. 그런 우리들을 쳐다보고 가는 여자아이들의 반응이 우리를 더 재밌게도 만들었다. 여자아이들의 얼굴 평가가 시시해지자 우린 들 중 누군가 ‘사과’와 말 걸 수 있다고 했고 우린 해보라고 부추겼다. 그 말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우린 그 녀석이 우리와 같은 쫌 생원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놈보다 더 대단한 놈이 되려면 더 센 것을 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우리들 중에서 나처럼 별 존재감이 없던 한 아이가 갑자기 여자아이 쪽으로 가더니 여자아이의 뺨을 때리고 왔다. 정말 건들고 온 것이 아니라 때리고 온 것이다. 난데없이 맞은 여자애는 멍하니 있더니 자리에서 앉아 울기 시작했다. 우린 뭔 상황인지 몰라 머뭇거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냅다 뛰었다. 그리고 때린 놈을 부둥켜안고 그 용맹함을 칭찬하고 맞은 여자아이의 얼굴과 맞을 때의 표정을 조롱하기에 바빴다. 이미 늦었지만 거기서 멈춰야 했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폭력적이었고 이기적이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나쁜 일이니 하지 말자고 말하는 아이는 없었다. 여자아이들의 용모를 평가하고 치마를 들추고 때리고 도망 다니는 우리들의 폭주는 담임선생님이 종례 때 옆 학교 아이들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 있다는 데 그러다 걸리면 가만 안 둔다는 말씀 이후였던 것 같다. 우리가 폭주를 멈춘 것은 우리 행동의 잘못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선생님의 엄포가 무서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당시 여자 아이들은 우리의 장난감이었고 놀이기구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할 때쯤 우리는 그 장난감에 흥미를 잃고 있었고, 더욱이 맞는 공포를 무시하고 놀만큼 소중한 장난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자가 장난감도 아니고 서로 존중해야 할 나와 같은 인간임을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가서 내 옆에 나와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두 배나 많았던 사범대학의 특성상 여학생들과의 부딪힐 일이 많았고 그들과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또 그렇게 했을 때 내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에 되었다. 지금도 그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놀이에 희생되었던 그 여학생들을 사실 만나기도 두렵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 미안합니다. 죄송했습니다.

요즘 “한남충, 김치녀” 등 남녀를 서로 비하하는 말을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본다. 그리고는 장난이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억울한 표정들이다. 또 상대방이 먼저 그래서 그랬다고 한다. 그중 몇몇은 남자의, 여자의 문제점과 사회의 불평등함을 나에게 고발하고 선생님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막막할 정도로 답답하기도 하다. 또 교무실만 나가면 다시 서로를 비하하면서 낄낄대고, 욕을 할 것 같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상대방에 대한 비하와 조롱의 행동과 사고방식들이 유튜브,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조직화되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너무 쉽게 용인되는 것이 아닌지, 또 그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모방 학습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미안하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그래서 상대방이 없으면 나 역시 불완전하고 행복할 수 없음을 학교와 사회에서는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농담하고 비하하는 행동들은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게 하고 그것은 또 상대의 문제점만을 찾게 하여 잘못된 사고를 더 강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결과를 가져올 뿐임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예전의 나처럼 너무 늦게 자연적으로 깨닫기를 기다리기에는 남녀 성 갈등은 심각하고 그 폐해 역시 막심하다. 학교와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해결책 모색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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