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팔아도 못 사는 소나무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하다.

by 이동수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다. 그에 맞게 고풍창연한 건물과 잘 가꾸어진 조경이 멋지다. 입학식에서 처음 본 학교 건물과 나무들은 그 자체로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멋진 나무와 동상과 기념비가 멋있고 자랑스럽다는 내 자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동상으로 세워진 인물의 훌륭함과 위대함을 교육받았고 교육이 계속되면 될 수록 우리의 흥미는 옅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점심을 후다닥 먹고, 사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이미 거의 다 먹어서 먹을 게 없기도 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한자가 가득해 어차피 읽지도 못할 기념비를 읽겠다고 기념비가 있는 잔디밭에 들어갔다. 분명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 팻말을 봤지만 뭐 어떠냐 싶었다. 그런데 1분도 지나지 않아 수위 아저씨의 악 쓰는 소리가 들렸고 우린 무조건 도망쳤다. 건물 뒤에 숨어서 수위 아저씨가 안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읽지도 못하게 하는 기념비를 왜 세웠냐고 투덜댔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하굣길에 수위 아저씨에게 잡혀 혼나는 아이를 봤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붙잡힌 아이를 멍청한 놈이라고 비웃고 그놈이 혼나는 것을 일부러 지켜봤다. 우리의 상대적 지혜로움에 대해 보상 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또 우리가 며칠 전 잡혔으면 어떤 처벌을 받았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수위 아저씨는 그 나무가 얼만지 아느냐고, 너 팔아도 못 산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말 것이지 못 돼 처먹은 새끼가 꼭 하지 말라는 더 한다는 둥 듣기 민망한 쌍욕을 해대셨다. 도대체 나무 하나가 얼마나 비싸길래 사람을 팔아도 못 사나 했는데 그 녀석이 "얼만데요." 했다. 도대체 얼만데 이 난리냐, 잔디에 들어가고 나무 좀 건들었다고 이렇게 수많은 아이들이 하교하는 하굣길에서 나에게 이런 개망신을 주느냐는 항변이었던 것 같다. 수위 아저씨는 가소롭다는 듯이 "너 팔아도 못 사!"라는 말을 한 번 더 하셨고 이 가엾은 열혈(?) 청소년은 "도대체 얼만데요 얼마냐구요!"하고 반항적으로 따졌다.


“삼천만 원!”


수위 아저씨의 대답과 아이의 욕이 거의 동시에 나온 것 같았다. 그 소나무가 30년 전에 정말 삼천만 원이었는지, 수위 아저씨의 과장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삼천만 원이라는 숫자는 길길이 날뛰는 아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돈이었고 “널 팔아도 못 산다."는 말을 금방 수긍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내뱉은 욕은 삼천만 원에 비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스스로에게 내뱉은 욕이었다. 삼천만 원 소리를 듣고 아이는 수위 아저씨의 더 심한 욕에도 아무 반항을 하지 않았고 상대의 반응이 없자 재미가 없어진 아저씨는 한 번만 더 걸리면 그땐 가만 두지 않겠다는, 부모님 불러 나무 값 물어내겠다는 협박과 함께 수위실로 들어가셨다. 물론 구경꾼인 우리에게 너희들도 나무 건들면 가만히 안 둔다는 엄포는 잊지 않으셨다. 우린 삼천만 원의 진실에만 관심이 있었다. 맞다느니, 뻥이라느니. 아무튼 삼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돈은 우리로 하여금 절대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졸업할 때쯤에 그 생각은 오천만 원으로 후배들에게도 전해졌다. 그 당시 우리는 교실에서 국민윤리, 사회 시간 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열심히 배우고 외웠지만, 교실 바로 밖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우리보다 귀한 나무가 있음도 배웠다.


당시 나와 내 친구 누구도 인간의 가치는 돈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엄청난 귀한 것임을 책이 아닌 생활 속에서 체험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람이 더 귀해요 할 것이다. 인권에 대한 자각이 조금 생겨난 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10억 줄게 대신 10년 동안 감옥 갈 사람 하면 꽤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든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학 나와서 열심히 일해도 10억 못 번단다. 10년 회사 다닌다 생각하고 감옥 갔다 오면 된단다. 액수만 달라졌지 여전히 돈을 더 귀하게 보는 생각은 여전한 것 같다. 아이들만 뭐라고 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세월호 참사 날 학생들이 받을 보험금이 나오는 방송, 상상도 못 할 부정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나와 여전히 잘 살고 있는 재벌, 뒷돈을 받아먹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인격보다는 성적으로, 직업과 수입으로, 다니는 학교 이름으로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우리들의 인식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면 나는 너희들이 무엇이 되건, 너희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든 그 노력과 상관 없이 너희들은 그 자체로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딱히 먹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늘 아침에는 먹히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너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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