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회비, 맘모스빵 그리고 수저론

추억이라기엔 너무 아픈 기억들

by 이동수

얼굴이 벌게져서 들어오신 선생님께서 아이들 이름을 신경질적으로 부르기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교실 앞으로 불려 나온 10여 명의 아이들에게 매월 내는 450원 육성회비를 왜 안 냈으며 언제 낼 것인지 따질 것이며, 어쩌면 때리시고 벌을 줄 것이며 또 어쩌면 집에 가서 가져오라고 하실 것이다. 오늘 선생님의 표정으로 육성회비가 여러 달 밀린 아이들 몇은 때리고 쫓아내실 것 같다. 이후 벌어질 일에 고양이 처분에 놓인 쥐처럼 우리는 선생님 앞으로 가며 우리 모두는 정해진 표정과 어눌한 말투를 준비했다. 역시 예상대로다. 오늘까지 낸다고 해놓고 안 냈다고, 거짓말했다고 세상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하시면서 때리신다. 난 이 정해진 절차가 빨리 끝나기만 바랬다. 한참을 그렇게 화내시던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몇을 꼴도 보기 싫다며 집에 가서 육성회비 가져오라고 한다. 못 가져오면 학교 오지 말라고 하신다. 생쥐들은 고양이 앞을 벗어날 기회를 찾은 것처럼 티가 나지 않게 빠르게 교실 문을 나섰다. 교실 문을 나서며 우리들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분노와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이 순간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교실에서 쫓겨난 아이들 중 집에 가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집에 가봐야 부모님들은 집에 없었고, 집에 있다한들 육성회비 450원이 있을 리는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을 나온 아이들은 자연스레 학교 담장을 돌아 조금 떨어진 두부공장 앞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두부공장 앞마당은 우리가 집에 가서 부모님을 찾아 육성회비를 달라고 하는 상상 속 시간을 보내기에는 학교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었으며, 다방구, 비석 치기 등 그 당시의 놀이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두부공장 터에 모인 우리는 누구도 집안 사정이나 교실에서 당한 일을 말하지 않았다. 또 울지도 않았다. 국민학교 2~3학년의 어린아이들이었지만 그런 말들이 아무 소용없음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교시도 못하고 쫓겨난 난 아이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낸 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점심시간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오는 매머드 빵을 먹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만난 적도 없는 부모님의 며칠 후 꼭 내신다는 말씀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선생님에게 전해드렸다. 선생님은 내 말은 귀담아듣지 않으시고는 귀찮다는 듯이

“거짓말이면 정말 혼나!”

“네. 꼭 내신 대요.” 난 “꼭”을 더 특별히 강조해서 말한다. 선생님은 그때서야 나에게 나온 맘모스빵을 주셨다. 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빵을 받아 들고 자리로 와서 먹었다. 그 당시 여러 아이들 앞에서 육성회비를 못 내서 맞고 쫓겨난 것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 대부분도 나와 사정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친구를 위로해 주거나 놀리지 않은 것은 너무 거창한 말 같지만 서로의 처지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빵을 받으며 나는 무엇에 감사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조금 덜 때리고 쫓아내셔서인지, 빵을 먹게 해 주셔서인지, 육성회비 없이 돌아온 제자를 받아주셔서인지, 믿지도 않는 허황된 약속을 받아주셔서인지 모르겠다. 그 강요된 감사의 시절을 살아낸 나와 내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여전히 아프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의무 무상교육이 고등학교까지 확대를 눈앞에 둔 지금. 철 지난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지금은 육성회비를 못 내서 쫓겨나는 아이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육의 평등한 기회가 보장된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현재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유가 아닌 부모의 재산이나 환경 때문에 최소한의 교육만을 받고 더 좋은 교육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다 같이 가난했던, 그리고 다 같이 비교육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서로 동지애라도 생겼던 예전보다 상대를 불쌍하게 보거나 조롱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우월의식을 갖게 하는 사회분위기는 더 심해진 것 같다. 금수 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론은 교묘히 위장되어 아무 벽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넘을 수 없는 벽, 즉 계급으로 굳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교 입학에서 교육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20%까지 확대한다니 반갑다. 그러나 이 계획이 40년 전 맘모스빵처럼 시혜적이고 던져주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 정책이 이 사회를 유지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정책 중 일부분이어야만 한다. 이 제도가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지 말고 교육적 약자에 대한 더 다양한 지원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너무도 자연스레 인정받고 있는 수저 계급론이 옅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19.11.11.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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