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단상
수학여행 가기 며칠 전부터 우린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서 뭘 하며 놀 것인지, 얼마를 가져갈 건지, 어떤 옷을 입고 갈 건지... 아무튼 모든 것이 신나는 일이었다. 나 역시 온 가족이 몇 달 동안 준비해서 비교적 빠른 시기에 수학여행비를 냈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수학여행 한참 전부터 선생님이 매일 조회, 종례시간에 수학여행비 미납자들을 불렀고, 그 불편한 시간을 우린 애써 모른 체 했다. 선생님의 독촉 때문인지 우리 반은 결국 모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무슨 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주요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다 좋았지만 관람 예절이니 뭐니 하며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던 박물관, 기념관 가는 것은 싫었다. 그런 곳을 갔다 오면 우리 중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무식하니, 교양이 없다느니”하는 지청구와 함께 무식하게 맞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좋아하는 곳은 야외에 있는 낙화암이나 정림사지 같은 사적지였다. 확 터진 공간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떠들 수 있었고, 번데기, 핫도그 같은 주전부리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몇 번을 타고 내리며 몇 군데의 실내 시설을 둘러보고 지칠 즈음 우린 정림사지에 도착했다. 지금은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40여 년 전에 그곳은 정말 탑 밖에는 없었다. 한눈에 모든 것을 다 본 우린 몇 시간 동안 결박당했던 입과 몸을 풀어헤치고 마구 돌아다니며 놀았다. 때마침 거기를 찾아온 여학교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보통 때 같으면 선생님들의 호각소리와 함께 1,000명의 학생들이 줄을 맞추어 모이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이때는 한 2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만큼 우린 발광하고 있었다. 집합 시간이 늦어질수록 선생님들의 화와 호각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가까스로 집합한 우리들 앞에 분을 못 삭이신 선생님께서 몇몇 학생들을 끌고 오셨다. 여학교 학생들에게 작업(?) 걸다 걸린 학생들 같았다. 끌려온 학생들에게서 생판 모르는 여학생들에게 작업 걸던 그 객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맹수의 관대한 처분만 바라는 한 마리 양이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게 학교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발정 난 똥개처럼 행동했다며 뺨을 때리고 군홧발로 때렸다. 여러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아무도 그 선생님을 말리지 않았고 우리 역시 발정 난 똥개란 말에 웃기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런 잘못을 해서, 재수 없게 붙잡혀서 저런 꼴을 당하나 “빙신”하고 놀렸던 것 같다. 그 발정 난 똥개로 칭해진 아이의 인격, 바람직한 지도를 생각한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도 한참 후였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정림사지 삼층 석탑은 한참동안 ‘발정 난 똥개가 군홧발’로 맞은 곳으로 기억됐다. 그러다 석탑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깨달은 것은 정말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지금도 주제별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수학여행을 간다. 여러 여건이 좋아져서 여행의 가치가 예전만 못한 것 같지만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의 설렘은 줄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그 즐거움에 끼지 못하고 왕따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 당시 우리가 다 모일 수 있는, 발산할 수 있는 야외를 더 좋아했던 것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감시를 피해 각자 핸드폰 게임을 할 수 실내를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서 정말 안타깝다. 예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신경질적 호루라기 소리와 쌍욕과 군홧발 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