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멀어진 순간
학교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놀이터였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던 내가 그나마 공부했던 과목이 영어였다. 한글과는 다른, 어쩐지 무진장 유식한 사람들이 쓰는, 또 그런 사람이 되려면 꼭 배워야 하는 과목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영어라는 것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된 나는 알파벳을 따라 그리고 단어를 외우는 것이 나름 재미있었다. 그리고 남자중학교에 몇 안 되는 여선생님이셨던 영어 선생님의 그 이상한 발음이 너무 예뻐 보였다. 그래서 아무도 나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시험을 보면 반에서 두세 번째 정도로 좋은 성적은 올렸던 것 같다.
나름 혼자 열심히 하고 있던 중2 가을쯤 아무리 해석하려 해도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있었다. ‘톰이 벽을 페인트로 칠했다.’는 얘기였는데 이걸 ‘벽이 톰에 의해 칠해졌다.’라고 바꾸라는 것이었다. 즉 수동태를 공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당시 그 부분이 막혀서 도저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는 그림이 그려진 완전정복 영어 참고서를 몇 번을 읽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굳이 이렇게 말해야 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하는 생각이 내가 수동태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나는 몇 시간을 읽고 또 읽었다. 집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부모님을 포함해 우리 식구 중 돈을 안 벌고 공부를 하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시간 혼자 끙끙대다 결국 나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다음 날 선생님에게 어떻게 질문할지 생각한 후 3교시 수업을 끝내고 나가는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벽이 칠해졌다.”를 이해할 수 없다는 나를 붙잡고 복도에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의 설명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완전정복에서 본 설명 그대로였다. 한참을 설명하신 선생님은 “알겠니?”라고 물으셨고 난 선생님의 그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 후 한참 동안 영어시간에 수동태를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영어 체증은 해결되지 않았고 좋아하던 영어 시간이 점점 답답해져만 갔다. 그 이후 나는 영어를 비난했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영어 성적은 바닥을 기기 시작했고 겨우겨우 “가”를 모면하는 수준에 만족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영어를 포기했다. 그때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다. 그런데 나에 맞는 설명을 해주셨으면, 나의 체증에 맞는 약을 주셨으면 어땠을까? 또 내가 뭘 모르는지 분명히 말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됐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 난 뭘 모르는 데 묻고 설명을 들은 후 나에게 다시 설명시켜 본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이 없을지는 몰라도 나처럼 답답하고 포기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아이가 없기를 기도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고 있는지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