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새로 옮긴 학교는 한 학년에 4 학급으로 총 12 학급 규모의 학교다. 작은 학교인 만큼 학생 수도 교사 수도 작았다. 학교라는 곳이 규모가 작아도 할 일은 결코 적지 않아 선생님들 모두 서너 가지 이상의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지쳐 있었고 또 그만큼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어쩜 그것이 학교를 유지시키는지도 몰랐다.
그날은 꽤 오랜만에 교사끼리 회식한 날이었다. 학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멧돼지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술이 들어가고 몇몇 선생님들의 노래가 이어질 즈음 한쪽 구석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저래?”하는 수준이었지만 진정되지 않고 모처럼의 즐거움을 깨버렸다. 한쪽 구석에서 저경력 교사로서의 마땅한 의무인 고기를 굽고 있던 나는 적잖은 당황과 호기심으로 재미진 싸움을 구경했다. 남녀 교사의 싸움이었다. 그것도 그룹화돼서 서로에게 반말로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냈다.
부장 선생님들의 “별것도 아닌데 왜 그래?” 하는 회유와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 하는 시비 그리고 “서로서로 힘든 일 나누자구요.” 하는 여선생님의 하소연과 “정말 양심도 없어!” 비난이 끝날 기미 없이 한참 이어졌다.
“뭐 때문에 저래요?” 하고 옆 선생님에게 물으니,
“주번 교사 때문이지. 여선생님들이 주번 교사가 힘이 드니 다 같이 하자고 했나 봐.”
지금은 없어졌지만 주번 교사는 각 반의 주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교사다. 1주일 동안 다른 교사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와서 교실과 복도, 화단 등의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각반 주번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모든 수업을 마친 후에도 청소 검사를 하고 문단속을 점검해야 해서 1시간 정도 다른 사람보다 늦게 퇴근을 해야 했다. 청소 상태가 조금이라도 교장, 교감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타박을 듣는, 한 마디로 힘들기만 하고 잘해야 본전인 그런 역할이었다. 게다가 초과근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교사들이 하기 싫어했다. 그런데 그 주번 교사를 부장들은 중요하고 힘든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부장들이 모두 남자였기 때문에 특히 여자 선생님들의 불만은 컸다. 그것이 오늘 터져 버린 것이었다. 그때였다.
“네가 대학 다니며 놀 때 난 이 학교에서 개고생 했어. 알아!”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부장이 된 남선생님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것으로 싸움은 끝이었다. 여선생님들이 더 이상 얘기해 봤자라고 하며 가버렸기 때문이다. 난 여선생님들을 말려보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어쩔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배웅을 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 부장이 또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늦게 온 사람들도 각자 저마다의 세상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더욱이 일찍 왔느냐 늦게 왔느냐는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 주번 교사가 문제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누가 하든 자신은 빠질 이유만을 찾는 모습은 한심하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주번 교사를 부장들이 하느냐 마느냐 보다 더 큰 문제인 서로 간의 불신과 미움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선생님 여기서 개고생 할 때 나도 다른 학교에서 개고생 했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이 학교의 현재 모습이 개고생 한 것을 자랑할만한 수준이에요.” 하고 말해 버렸다.
다른 학교 경력이 3년 있지만 어쨌든 신입인 교사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자 선생님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곧 싸가지가 없다느니, 뭘 몰라서 그렇다느니 하는 비난이 날아왔다. 그들은 내가 다른 학교에서 고생했다는 말보다 학교 모습이 자랑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말에 더 분노했다. 선생님들이 그동안 최선을 다해 만들어 놓은 학교가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말은 그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수많은 이유로 나를 찾아온다. 저마다 자신이 잘했다고 하고 상대의 잘못은 길게 이야기한다. 간혹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 한다. 이런 ‘투덜거림’이 진행되다 어떨 때는 원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상대방과의 관계, 자신의 자존심, 다른 사람의 시선 등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 자신을 지키는(?) 성이 완고하지 않아서인지 곧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을 위해 서로의 의견을 듣는다.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 아이들이 해결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얼마 안 있어 또 온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며 그래야 어른이 돼서도 자기 것만 지키려고 난리 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