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by 이동수

○○가 오늘도 지각이다.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또 지각이다. ○○는 학교를 옮기고 내가 맡은 첫 번째 중학생 제자였다. 울산에서 고3 특별반 담임을 하다 현재 학교로 옮겼다. 학교에서는 나에게 중1 담임을 맡겼다.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가르치는 것은 똑같겠거니 한 나의 생각은 근무 첫날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아이들은 내가 뭔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했고, 시도 때도 없이 교무실로 찾아와 누구 어쨌다 저쨌다 하며 고자질했다. 어떤 아이들은 갑자기 울어 나를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든 것이 ○○였다. 오늘 하루 아이들과 잘 지내야지, 칭찬 많이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출근한 나에게 ○○의 지각은 일종의 시련이었다. 협박, 체벌, 달램 등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보니 엄마, 아빠, 그리고 5살 남동생과 같이 학교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 5분도 안 걸리는 데 지각이라니. ○○의 게으름과 불성실함을 한 바탕 질타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왜 늦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다짜고짜 엎드려뻗치라고 한 후 엉덩이를 세 대 때렸다. 또 늦으면 그땐 더 많이 심하게 때린다고 하고 들여보냈다. ○○는 울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더 화나게 한 것 같기도 하다.

교무실로 내려와 부모 연락처를 찾았지만 전화가 없었다. 부모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찾아가서 부모를 만나 지각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리라 결심했다.

수업을 마치고 ○○를 불렀다. 내일 가정방문을 할 테니 엄마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황당해서 왜? 하고 물으니 대답 없이 울기만 했다. 뭔 사정이 있구나 싶었다. 더더욱 엄마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네 집을 아는 아이를 앞세워 집에 가보았다. 학교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길가에 있었다. 도로보다 한 발은 내려앉은 집이었다. 그것도 군데군데 깨진 슬레이트 지붕 집이었다. 있으나마 나한 대문 앞에서 ○○를 불렀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안 들리나 싶어 대문 안으로 들어가 다시 ○○를 불렀다. 군데군데 찢어진 문풍지문, 낡은 수도, 잡초가 우거진 마당 한눈에 봐도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았다. 여기 맞나 하고 같이 온 아이들을 보니 끝방을 가리켰다. 거긴 큼지막한 자물쇠로 채워진 방이었다.

“저기예요, 선생님! 저기가 ○○ 방이에요.”

“뭐? 맞아?”

난 믿을 수 없어 몇 번을 물었지만 아이들은 어제도 저 방에서 같이 놀았다고 했다. 자물쇠로 채워진 걸 보니 아무도 없나 보다 하고 나오려는데 그 방에서, 자물쇠가 채워진 바로 그 방에서 소리가 났다. 분명 그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당황스럽고 약간 무서운 마음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본 것인가 했다. 그래서 다시 봤지만 똑같은 장면이었다. 그 안에는 네댓 살 되는 남자아이가 팬티만 입고 콧물을 질질 흘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난 정신 차리고 그 아이에게 누구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다시 어른은 없니? 하고 물으니 그때서야 아빠 돈 벌러 갔다고 했다. 난 얘가 ○○ 동생인가 보다 생각했다.

“누나는 어디 갔니?”

“아까 나갔어요.”

“언제?"

"몰라요 한참 됐어요.”

그때 ○○가 집으로 들어왔다. ○○는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들고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난 눈물이 나려고 했다. ○○를 데리고 나가 가게로 가서 과자를 사서 동생하고 먹으라고 주었다. 내일은 학교에 꼭 나오라고 말하고 나왔지만 내일도 학교를 안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걱정과 달리 다음 날 ○○는 늦지 않고 왔다. 동생은 어떻게 하고 왔냐고 하니 할머니 집에 데려다주고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옆 동네 산다고 했다. 그리고는 엄마는 동생 낳고 얼마 안 있다가 나갔고 아빠는 아파트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일한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와서 돈을 주고 간다고 했다. 할머니가 자주 오셔서 밥도 해주고 반찬도 해주고 하는데 자주 아프셔서 요즘은 못 오신다고 했다. 할머니가 아프시면 동생을 볼 사람이 없어 최대한 동생과 같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잠그고 온다고 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이런 아이에게 게으르다고, 불성실하다고 욕을 했으며 어제는 때리기까지 하다니... 난 선생도 아니었다. 중1 담임선생님의 폭력이 싫어 선생님이 되야겠다고 결심한 내가 이런 일을 하다니...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옮기고 힘들다고 아이들이 수준이 낮아서 못 해 먹겠다고 짜증만 낸 내가 교사라니. ○○에게 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장학금 등 어떤 돈이라도 만들어 ○○를 지원해 주었다. ○○는 여전히 때때로 지각을 했지만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11월에 ○○를 포함한 다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가출을 했다. 집에서 돈을 가지고 나갔지만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부모가 모두 출근하면 빈집에 들어가 놀다가 밤에는 학교 근처를 떠도는 것 같았다. 여학생이라 더 걱정이었다. 동생을 끔찍이 생각하는 ○○였는데 동생을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나갔다는 게 금방 이해되지 않았다. 며칠 후 한 밤중에 한 여학생의 부모로부터 두 명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섯 명이나 되는 어린 여학생들이 주유소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분이 112에 신고해서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세 명은 도망가고 두 명만 데리고 있다고 했다. 당장 가보았다. 두 아이는 정말 꾀죄죄한 얼굴로 아버지가 사준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나머지는 어디 갔니?”

“몰라요.”

“어떻게 지냈니?”

“갖고 나온 돈으로 라면도 사 먹고, 부모님 나가는 거 기다렸다 집에 들어가서 놀았어요.”

“왜 주유소 화장실에 있었니?”

“추워서요.”

“왜 가출했니?” 하고 물으니 부모 눈치를 보다

“○○가 불쌍해서 같이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요.”

아이들은 불쌍한 ○○를 여러 가지로 돕고 있었다. ○○이 점심을 싸오기도 하고, 준비물을 사다 주기도 하고 그러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러나 아이들이 ○○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어서 아이들은 미안해지기 시작했고 같이라도 있어주는 것이 친구의, 아니 인간의 도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난 ○○만 생각하고 주변 아이들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하지 못했다. 어른인 나도 ○○가 불쌍하고 안 돼서 마음이 흔들렸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흔들릴까 생각했어야 했다. 다음 날 한 아이는 집으로 스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끝까지 ○○와 한 아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는 지금까지 교사 생활하는 동안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그때 내가 돈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좀 더 세심했다면, 좀 더 따뜻했다면 ○○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나의 게으름 때문에 ○○ 같은 아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난 이 일이 있은 후 미래를 이끌 훌륭한 인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를 만들지 않기 위해 좀 더 보고, 좀 더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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