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말아먹으려고...

함께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by 이동수


10년도 훨씬 더 된 겨울 어느 날 나는 겨울방학 중 근무를 서기 위해 학교에 출근했다. 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데 한 선생님이 교무실 문을 빼꼼 열더니 나를 살짝 불렀다.

“왜요?”

“선생님, 내년도에 교무부장해요?”

“뭔 소리예요? 내가 무슨 교무부장?”

“내가 들었어. 법인에서 승인이 났다고 하던데...”

믿을 수 없었다. 첫째, 난 그때까지 어떠한 부장도 한 적이 없었다. 부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내가 부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일 많은 교무를 한다니. 둘째, 교감선생님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교무는 관리자와 선생님들 사이에서 때론 전달하고, 때론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선생님들의 신뢰는 물론이고 관리자 특히 학교의 실무를 총괄하는 교감과의 호흡, 신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점에서 난 적합하지 않았다. 아니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셋째, 토론이 없는 수직적 문화, 중요한 사항을 일부만 모여 결정하고 일부만 알고 있는 정보의 폐쇄성 등으로 마음이 상해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이런데 시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무시했다. 그런데 계속 근무를 서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혹시 실제로 그렇다면 그건 엄청 문제였다. 막아야 했다. 그래서 정말 어렵게 교감선생님에게

“혹시 제가 내년도 교문가요?”

“어디서 들었어요?”

“누가 그러던데요. 맞나요?”

“확인해 줄 수 없어요. 인사는 비밀입니다.”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실은 당신이 교무라는 이야기였다. 난 “왜 당신하고 원만하지도 않은 나를...”하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인사는 장난이 아닙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바로 교장선생님께 갔다. 교장선생님께선

“교감선생님이 인사 안을 갖고 왔을 때 나도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생각해 보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승인했어.”

“너무 가혹하고 힘듭니다. 재고해 주세요.”

“안돼. 이미 이사장님 결재도 났어.”

“죄송하고 무식한 말씀이지만 말씀드려서 취소해 주세요.”

“안돼. 할 수 있어. 왜 못한다고만 생각해.”

아무리 말씀을 드렸지만 같은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취소해 주실 때까지 계속 오겠습니다. 취소해 주세요.”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날부터 정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엔 “왜?”란 말만 떠올랐다. 주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교감선생님이 나를 자기 가까이 두고 골탕 먹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스러웠다. 공립학교로 떠나게 된 전임 교무부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교무부장은

“조직원이 인사를 문제 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 마음에 안 든다면 떠나는 거지.”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생님이 평소 말한 학교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하라고 하는 후배 교사도 있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직장인의 비애로 고통받고 있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이 “학교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시켜.” 하는 말을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욱하고 올라왔다. ‘그래 난 뭣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렇지... 좋아. 내가 하겠어. 해서 당신 말대로 말아먹어 보겠어.’ 그날로 고민을 끝났다.

후배 교사가 말한 대로 내가 해보고 싶은 것, 바꿔보고 싶은 것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기로 시작한 교무부장 역할을 그리 잘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게으름은 피우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나중에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지만 교무부장은 시험 삼아 시켜보거나, 가까이 두고 해코지하기 위한 자리는 결코 아니었다. 교감선생님 역시 나에게 무한한 신뢰와 자율성을 보장해 주셨다. 감사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다.

교무부장을 하며 수 없이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들 속에서 난 나름 성장했고, 아니 생존했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몰라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반대로 기존의 폐습을 약간이나마 고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금 느리게 변하더라도 동료와 함께 이야기하며 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더 빨리 변하는 길임을 그땐 알지 못했다. 어쩜 그걸 알기에 서른여섯은 너무 어린 나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그 길을 끝까지 피했다면 함께 하는 것이 빠른 것이라는 이 소중한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 말아먹으려고..."라는 말로 나의 오기를 불러일으킨 선생님이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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