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보다는 믿음으로 보기
교복자율화를 하게 되면 학생들의 탈선이 우려된다, 빈부의 격차가 드러날 것이라는 등의 걱정이 넘쳐 났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아무리 머리를 길게 하고 사복을 입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연적으로 학생임이 티가 났다. 물론 고가의 옷과 신발 등을 사고 부러워했지만 대부분은 자율화 취지에 맞게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복자율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3년도 못가 학교장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원위치되고 말았다. 정해진 대로만 행동하던 것에 익숙한 세대에게 자율은 방종으로 보였고, 제도 안착을 위한 과도기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직도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조례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는 것으로 봐선 30년 전 자율을 통한 인권의 가치 신장은 시기상조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70년대에 세워진 학교다. 그리 오래된 학교도 아니고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학교도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기준을 정해 놓고 따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 학생들이 입학하기 훨씬 전에 만든 기준으로 말이다. 선생님이나 어른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아이들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싹을 자르고 멸시하는 분위기는 예전에 비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한 것 같다.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 후 많은 반성이 있었지만 그때뿐인 것 같다. 학교가, 교사는 너무 느리게 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만이 남은 것 같다.
교복이나 두발로 개성을 누르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통제하고, '철 지난 교칙, 학생답게, 나 때는 말이야'로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통제하려 드는 것이 지금의 학교가 아닐까? 학교가 꼰대다. 그러니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당연한 게 아닐까? 이러다 학교는 생존할 수 있을까?
교사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관리자의 지시에 무조건적 순응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신념을 갖고, 소명 의식을 갖고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생각이 많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