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 알려드릴게요
원칙을 지키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서로 존중해야 바로 간다.
“따리리...”
휴일 아침부터 울려오는 전화가 불안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생님 저 ○○입니다.”
전화기 너머로도 선생님의 축 처진 어깨가 느껴졌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아무리 직장인이라지만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휴일에까지 전화할 리는 없었다. 알지 못하는 불안과 별일 아니기를 하는 기대... 하여튼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뭔 일 있어요?”
“으~ㅁ ○○아버지가 이따 학교로 온대요.”
“왜요?”
“제가 낸 이번 기말고사 시험 문제가 오류가 있다는 건데... 며칠 전에 전화가 왔길래 잘 설명했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본인이 특목고 출신인데 직접 풀어보고, 여러 군데 물어보고 했는데 자기 딸이 선택한 답이 맞다고...”
“교과 협의는 하셨어요?”
“네. 해서 문제는 중학교 교육과정에 근거한 오류 없는 문제라고... 학부모한테도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 안 들으세요. 계속 본인 말만 하세요. 그리고는 오늘 10시에 학교로 오신다고 하네요. 어떻게 하죠?”
“오시라고 하세요. 그리고 선생님하고 누가 수업 들어가시죠?”
“○○선생님이요.”
“교과 선생님들 다시 한번 협의해 주시고요. 선생님, ○○선생님, 교과부장 선생님은 휴일이지만 나오셔야겠는데요. 학부모님 오시기 전에 모여서 한 번 다시 협의해 보죠. 저도 지금 나갈게요. 그리고 문제를 저에게 사진 찍어서 보내 주실래요?”
교감선생님께 사안을 보고 드리고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이 보내 준 문제 사진을 평소 알고 지내던 다른 학교 선생님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과 선생님 모두가 나와 있었다. 문제를 출제하신 선생님에게 출제 과정과 출제 근거가 되는 교육과정 그리고 채점 기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학부모가 이의 제기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교과에서는 학부모의 견해는 중학교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문제 출제 오류가 아니라고 하였다. 검토를 요청했던 다른 학교 선생님도 같은 의견을 보내왔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서류봉투를 들고 학생의 아버지가 오셨다. 그리고는 문제가 오류가 있다고 하셨다. 교과부장이 중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그에 따라 오류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계속 같은 말만 하시면서 학교를 교육청과 청와대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나는 문제에 이의가 있는 경우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여러 의견을 듣고 검토하고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다음 주 월요일에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어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학부모는 무조건 딸아이의 답이 맞다고 그렇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하였다. 학부모의 말에 자괴감이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해당 문제 출제자, 교과 선생님 모두 수모를 겪고 있었다. 도저히 더 이상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버님, 저희는 모든 설명을 드렸고, 정해진 절차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납득이 안되신다면 교육청, 청와대 신고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답답하다는 둥, 일처리를 못한다는 둥, 학교가 얼마나 깨끗한지 보겠다는 둥... 험한 말을 쏟아냈다.
“아버님, 지금 말씀하시는 것과 저희들의 말씀을 녹음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이렇게 녹음까지 하는 상황이 안타깝네요.”
“학교에서 왜 이리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팁 하나 알려드릴게요”
“뭔가요?”
“복수정답으로 인정하면 되잖아요?”
“아버님, 그 문제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월요일에 결정된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다시 한번 교과 협의회를 열었고 나도 참석했다. 그리고 외부 검토를 3개 학교 해당 교과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정해진 절차를 진행하면서도 선생님들의 복잡한 감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위로와 격려 뭐든 해야 했는데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섣불리 할 수 없었다.
월요일에 학업성적관리위원회에서 외부 검토 의견과 교과 협의 의견이 같음을 확인한 후 복수정답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님 전화로 연결돼서 결정 사항을 말씀드리고 이의 절차와 결정사항을 내용증명으로 보냈다. ○○ 아버님은 납득할 수 없다고 팁을 알려줘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른다고 화를 냈다. 나는 그건 팁이 아니라 불법입니다. 옳지 못한 거라고 누차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학부모가 내뱉는 말에 받은 상처는 오래갔다.
성적 조작을 ‘팁’이라고 하는 학부모의 멸시와 모욕의 상처는 “나는 원칙을 지켰다.”는 자부심만으로는 치유되지 않았다. 일부 존중할 수 없는 선생님들 때문에 묵묵히 원칙을 지키며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까지 도맷금으로 넘어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훌륭한 선생님들까지 여러 이유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다.
이 험악하고 변화무쌍한 시대에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똘똘 뭉쳐야 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아쉽고 그 결과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