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학교 방역기 (2)

소통이 방역이다.

by 이동수

학생들을 무사히(?) 보내고 코로나 19 방역 TF팀이 모였다. 등교 첫날 학교의 방역 방법에 대한 평가를 하고 예상과 다른, 또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문제에 대해 협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선생님들의 얼굴에선 하루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와 자부심 그리고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위원들은 담임선생님들이 너무 힘이 드니 업무를 나누자고 했다. 담임선생님이 하는 일 중에서 담임이 안 해도 되는 일 몇 개를 골라 비담임 선생님과 등교하지 않는 학년의 담임선생님들에게 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후 중2도 등교한다는 점이었다. 중3과 중2가 등교하면 ‘여유 병력’이 1학년 담임선생님뿐이므로 이분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이 간다는 점이었다. 다른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언제까지라는 기약이 없는 것이 선생님들을 더 움츠리고 날카롭게 했다.


밤사이 가까운 곳에 있는 한 개척교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학생들과 선생님의 불안은 더 커졌다. 인근 학교는 학년 당 3주에 한 주만 등교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2주에 한 번씩 등교하는 것을 유지했다.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원격 수업의 비효율성을 인정하지만, 등교 수업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고 그 효율성 역시 그렇게 높지 않으므로 우리 학교 역시 인근의 다른 학교처럼 3주에 한 번 등교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원격 수업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며 등교 수업의 확대를 주장하는 관리자들은 좀 더 추이를 지켜보고 논의하자고 했다.


내가 짠 코로나 19 방역 업무 배정표에 따라 매일 아침 등교 지도와 발열 체크, 쉬는 시간 순찰을 돌았으며, 점심시간 식당 안 질서 지도를 했다. 여기에 담임선생님은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까지 챙겨야 했다. 그리고 본인의 수업 시간표에 따라 마스크를 낀 채 숨 막히는 수업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한 학년만 들어가는 분은 조금 나은 편이었다. 두 학년 이상 들어가시는 분들은 이것 말고도 등교하지 않는 학년을 위한 원격 수업도 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는 동안 쿠팡 물류센터 감염이 확산되었고 결정을 늦추는 학교에 대한 선생님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누군가 쓰러져야 바꿀 거냐는 푸념 아닌 푸념도 터져 나왔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학교는 3주에 한 번 등교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선생님들은 안도했지만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이미 선생님들의 마음은 많이 상해 있었다. 결정을 한 후 30분쯤 후 수도권 학교는 등교 인원을 1/3 이하로 하라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발표가 있었다.


중3이 학교생활에 적응할 즈음 중3은 원격 수업으로 바뀌고, 중2가 등교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지만 중3 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그 사이 선생님들도 서서히 꼭 해야 할 일과 못 본 척 넘겨야 할 일을 구분했고 그에 따라 힘을 배분해서 일하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19 발생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예측과 그에 따른 지침 그리고 대책, 지시가 쏟아졌다. 그 수많은 것들을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교사들의 의견은 상황이 급변한다는 이유 등으로 생략되곤 했다. 납득되지 않는 지침과 대책, 지시 등으로 선생님들은 수동적이 됐고, 그러한 모습은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유연성과 창의성을 위축시켰다. 어쩌면 선생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코로나 19가 아니라 소통의 생략 인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급격하게 변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보다는 선생님들을 더 존중하고 소통한다면 코로나 19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도 거뜬히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6월 8일. 드디어 신입생이 왔다. 역시나 설레는 표정과 호기심으로 등교했다가 수많은 금지에 질린 모습이다. 생활 수칙을 안내하고 부탁하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주눅이 든 아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하는 선생님들이 더 환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코로나 19에 맞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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