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다. 미안하다. 그리고 힘이 든다.
아이들이 온다. 몇 번의 연기를 거듭하다 온다. 이번에는 정말 온다. 교육부는 대학입시로 더 이상 늦추기 어려운 고3부터 순차적으로 등교 수업을 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19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등교를 결정한 교육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집단생활하는 학교 생활에서 감염은 불가피하며, 그건 성적보다 중요한 건강, 아니 생명의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문제다. 세상을 보는 철학이 기반이 된 문제라 중간적 선택이 곤란한 문제다.
소모적인 논쟁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났다. 그리고 학생 등교 시작은 일선 학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등교가 결정된 상황에서 그나마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염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소독을 하고, 효과는 떨어지지만 온라인으로라도 학생들에게 생활 수칙을 한 번 더 교육하고, 학교의 방역 체계를 상황 별로 한번 더 점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도 했다.
수시로 달라지는 지침에 따라 안내하고 파악하고 또 원격 수업을 제때 듣지 않은 아이들을 재촉하느라 담임선생님들은 거의 하루 종일 전화를 붙잡고 씨름했다. 더욱이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으니 선생들은 좋겠다는 사회적 비아냥은 선생님들을 더 힘들게 했다.
하루하루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선생님들도 지쳐갔다. 특히 아이들과 씨름해야만 하는 담임들의 긴장과 피로는 상상 이상이었다. 감염 예방 조치들이 실제적 효과보다는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회의감.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감염 발생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이 두려움이 내가 맡은 학생은 한 명도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결합하여 선생님들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학교 방역 담당 부장으로 지침의 변동에 따라 학교 방역 대책을 조정해 선생님들께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나는 그 ‘날카로움’에 직면해야 했다. ‘왜 하필 이런 때 학생안전부장을...’하고 팔자를 탓하며 대책을 점검하고 상황에 따른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학생들이 왔다. 정해진 등교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이나 일찍 온 아이들에게 짧은 인사와 함께 내일부터 더 늦게 등교하라는 다짐을 받으며 나의 등교 지도는 시작됐다. 몇 개월 만에 등교하는 중3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등교하다 멀리서부터 서서 “마스크 똑바로 써라. 1m 간격 유지해라. 자가 진단했니?”하는 선생님들의 각종 질문과 요구에 점점 굳어졌다. 선생님들은 밝게 웃으며 바짝 다가오는 아이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밀어내고 코로나 19 학교 생활 수칙을 설명했다. 손 소독을 하고 발열체크 카메라를 통과한 후 교실에 도착한 아이들은 최대한 간격을 넓힌 정해진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교실을 나와 복도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달래 교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때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담임선생님들은 마스크, 라텍스 장갑 등으로 중무장하고 한 명 한 명 발열체크를 했고, 쉬는 시간 없이 학생들을 달래고 달랬다. 교장선생님이, 교감선생님, 보건교사, 학생부장인 내가 귀에 못이 박히게 생활수칙을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매 쉬는 시간마다 순찰 지도를 했다. 끊임없이 하지 말라고 해야 했다. 미안했지만 화가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는 4교시 담당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1m 간격으로 줄을 세워 발열체크 카메라를 통과한 후 식당으로 인솔했다. 맞은편, 옆에 친구들이 없는 상태에서 밥 먹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밥을 먹는 학생들의 모습은 불쌍하기까지 했다. 감염 예방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인간의 큰 행복 중 하나인 먹는 즐거움을 뺏은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표정으로, 기계적으로 밥을 먹는 데도 불평하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난 아이들이 코로나 19의 심각성을 TV나 인터넷 등을 통해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선생님들의 애쓰는 모습을 자신들의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교실에 간 아이들에게 ‘얌전히’ 있는 것은 참 무리였다. 아이들은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녔다. 중3 담임선생님들은 긴급하게 협의를 한 후 핸드폰 사용 허가를 관리자에게 건의했고 건의는 신속히 받아들여졌다. 핸드폰 사용에 대해 절대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분들도 아이들에게 무조건 교실에만 있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는 것은 인정했다. 결국 점심시간 교실에서만 허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사용했고 그에 따라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확 줄어들었다. 이렇게 전쟁 같은 하루가 어찌어찌해서 끝났다. 하루밖에 안됐는데 너무 힘들다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특히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하루를 보낸 중3 담임선생님들의 피로는 섣부른 위로나 격려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대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19에 맞설 수 없었다.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