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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Oct 07. 2015

자아계발

01. 나를 본다

그들

    학창 시절 내 방에는 누구나 그랬었듯이 '어떻게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자아계발에 관련한 서적이 네댓 권 자리해 있었다.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 어떻게 해서 하버드에 갔다라든지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책들도 반 정도 섞여있었다. 두어 번 어머님께서 내게 그것을 읽기를 권유하시기도 했지만, 한 번 정도 들척거리고 나서는 손조차 대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중 대다수가 이미 머리가 좋았고, 밤새워 공부할 만큼 자발적인 동기나 의지도 가진 '특수한 상황'의 born-to-be 잘난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무용담에 지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오고 얼마 뒤에 나 자신에 대한 각성이 일었다. 내게 있던 자기혐오 증세를 고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어렸을 적 내가 바랐던 모습이 되지 못한 데에서 오는 내 능력에 대한 배신감과 어느 것도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나 자신을 싫어하고 끊임없이 나쁜 말로 괴롭히고 있었다. 누구나 내 안의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무턱대고 윽박지르고 싫어하기만 한 셈이다. 자기혐오는 자연스레 자기연민으로 이어졌고 그러한 왜곡된 두 개의 시선이 나를 어둡고 좁은 시선 아래 가두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코칭'이라는 분야에 관한 무한 긍정의 자기계발서를 파고들었다. '코칭'이란, 그 사람과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을 던지면서 그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러닝메이트가 되어주는 개념이다.  정신의학에서 약으로 정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보거나 정신과 상담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고객(또는 환자)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에 도움을 주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이 때 코치의 수칙 중 하나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긍정해주는 것. 뒤틀려 있던 시선을 바로잡고 긍정적으로 사고를 전환하려고 노력했다. 사소한 실수나 잘못은 괜찮다며 넘길 줄도 알게된 것도 나에겐 큰 변화였다. 그렇게 애쓴 결과 나 자신도 점점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게 되었고 어렵고 부담스럽기만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자연히 개선되었다. 조금씩, 그러나 크게 변화되는 삶에서 오는 기쁨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켰다. 그에 따라 내 얼굴도 몰라보게 밝아졌다.



현실

    그 여세를 몰아 친구들과 함께 한 교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기도 하며 한창 바쁘게 살았더니 학기가 마무리될 즈음 힘을 다 쏟았는지 이내 지쳐갔다. 다시 좋은 말들도 회의적으로 들리기 시작하고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 준비되어있지 않은 부족함 등에 주눅이 들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모순되는 존재여서 나는 그런 와중에도 철없이 근거 없는 낙천주의적 희망을 한 구석에 품고 다니곤 했다. 


    대학 첫 학기부터 친하게 지냈던-그래서 나를 너무 잘 알고있는 A는 내게 거의 유일하게 그런 모순을 지적해주는 사람이었다. A는 세상 물정 모르고 환상 속에 빠져 사는 나를 위해 이따금 차가운 눈빛으로 현실적인 일침을 쏘곤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어 통렬한 마음으로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앉아있는 게 다였다. 나는 나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능성이라는 미명 아래 왜곡된 렌즈를 들이밀지 말 것. 현실을 뒤틀어보지 말고 똑바로 인지하는 능력을 기를 것. 이제는 사회에 나가기 전에 단련하는 시간을 가져야겠구나 싶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그 친구와 연락이 뜸해진 이후로는 내게 갈피를 잡게해 줄 사람이 없어 한동안 괴로웠다. 그러다 천행다행으로 내가 배우고싶고 필요로 하는 모든 걸 갖춘 사람을 만났다. 현재 내 반려자가 되어준 이 사람은 조용히 나를 지켜보다 한 번씩 내게 사려 깊고 성숙한 조언들을 건네주었다. 그런 통찰력과 생각의 공유는 정말 반가웠다. 다만 철저히 현실주의적이고 그래서 더 현실에 호의적인 이 사람의 몇 마디들은 내가 나를 자책하게 하는 안 좋은 습관들을 자극시키는 부작용이 있었다. 나는 사실 상당히 감성적인 편이어서 쉽게 상처를 입는다. A에게서도 상처를 입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A는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반면 이 사람은 매일 함께하는 사람이다보니 현실이 별반 달라질 것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다 추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한 실망으로 마음이 돌아설까 두려운 마음도 커서 더욱 불안해졌다. 그래도 이 과정이 다시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며 아픈 마음을 다독였다.


     한동안을 괴로운 마음을 안고 살다 지인 Y를 만났다. 그녀는 내 얘기를 듣더니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내가 자꾸 작아지는 말이라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냉정한 말들이 보약같다고 느껴진 이유는 한편으로 그들이 나를 끊임없이 지지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노력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간에 내 면역력이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Y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존감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막연한 숙제를 안은 채 우리는 헤어졌다.


사람들

    생각보다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았다.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지도 공격적으로 부정적이지도 않은 그 사이의 중간 타협점은 <태도에  관하여>라는 임경선 에세이를 집어들었을 때 발견할 수 있었다. '마성의 사슴'이라는 아프리카 bj¹의 말을 빌리자면 임경선 작가는 '언제나 차갑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언니'가 힘내라는 달콤한 말 대신 '엄살 부리지 마'라는 말도 가끔 해줄 수 있는, 차갑고 때로는 다정하고 그 사이를 매력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의견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그녀는 어떤 장엄하고 대단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평소에 우리가 가지면 아름다워질 가치나 태도들, 생각의 단면에서 이루어지는 미처 파악지 못했던 사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고도 분명하게 풀어낸다. 


    엄살을 봐주지 않는 차가운 면이 A나 나의 그 사람과 비슷할 듯 하지만 그녀의 문장들은 내게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다가왔다. 말하자면 'meta-자아'계발 이라고나 할까.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무엇에서 벗어나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고나 감정흐름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나 자신을 무심코 평가 내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문제의 소재를 나라는 '존재'로 뭉뚱그려 귀결시키지 않고 내 생각회로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또 오류를 발생시키고 있는 부분이 어딘지 들여다 보도록 돕는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그들의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앞으로 그와 같이 추구해나갈 수 있는 매뉴얼을 제시받은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책보다는 현실과 나를 사실 그대로 돌아보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받았다. 현실과 바람 혹은 망상 사이에 방황하는 나 자신이 이상한 것도 틀린 것도 아니지만 단지 어떤 행동이 더 바람직할지에 대한 팁이랄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고 브런치에 발행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일 것이다.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또 마냥 선망해 오기만 하던 '글쓰기'도 시작했다. 어딘가 더 편한 곳으로 자꾸 숨고싶은 은둔자의 삶이었지만 이제는 '친구공개'나 'Lock'이 걸려있지 않은 공개적인 곳에 글을 게재한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대립되는 개념 사이에서 방황했었지만 이제는 나 자신과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인 것 같다. 



山是山, 水是水. 
山不是山, 水不是水.
山只是山, 水只是水.

    




¹그녀가 진행하는 책을 추천하는 코너인 '사스미가 읽다' 유튜브 채널로도 구독할 수가 있다.
(링크 :https://www.youtube.com/channel/UCP3PHcvXZNvUu6QJs_rG9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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