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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Dec 07. 2015

지는 게임을 살아간다는 것

《어디까지나 개인적인》11월 19일의 기록.

인생은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242쪽)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책장도 입도 닫지 못했다. 인생이 지는 게임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실패자의 대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문장은《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서 임경선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다.  


계속 뭔가를 잃어가기만 하는 절망의 여정이다. 하지만 어차피 허무하게 지는 게임이라면, 기왕이면 규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지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단 사는 이상,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함을 어김없이 깨닫는다. (위 책, 242쪽)


그렇다, 나는 어쩌면 이기지 못할 게임을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연히 막막하고 또 허무하기만 했는지. 바로 어제도 나는 이 삶에 대한 회의를 느꼈더랬다. 도대체 이렇게 암담해 보이는 사회에서. 내가 털끝만큼의 흠집도 낼 수 없을 것 같은 부조리와 부패로 견고한 이 사회에서 내가 희망적으로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순간이 감기처럼 찾아온다. 하지만 실패한 인생이라  낙인찍기에는 너무나도 젊지 않은가, 그냥 그렇게 두루뭉술 끝내기는 했다. 매번 지는 삶을 부득이 이기려고 하니 지기만 하는 삶에 염세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생이 지는 게임이라서 오히려 더 충실히 살아낼 수 있다니, 혁명적 사고였다.


고통의 직면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스스로에게 '힘내라'보다 '일단 살아내자/견뎌내자'고 말한다. 그런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나다운 방법으로 애쓰며 앞으로 나아간다. (240쪽)


일단 살아내자, 견뎌내자는 말도. 

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상당히 희박한 사람이다. 안전감이 없는 삶이라고도 하더라. 인생이 의미가 있어서 살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지만 살다 보면 생기리라는 믿음은 특히 나에게 해 뜨면 사라질 안개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 허무를 느끼는지도 몰랐다. 일단 살아내고 견뎌낸다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낯설고 두려웠다.  그다음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하지만 그냥 이대로 정체하는 삶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너무나 명확한 100%였다.


어제의 인터뷰이도 그렇게 말했었다.(갈무리에 대한 고민 때문에 아직 올리지 못할 뿐 예전에 예고했던 인터뷰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살아간다는 의미보다 살아낸다는 게 훨씬 크다고.  내 남편도 그랬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말했던 것들은 거의 환경적인 영향들이었다. 나는 이런 환경에서 살았으므로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서, 혹은 장녀이기 때문에. 나는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집의 외동딸로 태어나 기실 경제적으로는 별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살지 않았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것 외에 큰 고민도 없었거니와 그런 압박도 별로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코 잡을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욱 허망함이 깊어졌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읽으며 깨달은 바로는 환경적인 것이 분명 영향은 주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데에 있어서의 태도란 그 사람의 생각과 결정이 더 크게 작용하니까.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의 시작을 알리는 첫 구절에 적힌 이 문장에서 나는 한참을 뜸 들였다. 내가 요즘 들어 계속 생각하는 화두인지라 깊은 울림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니 이 문장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생의 요약이기도 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임경선 작가의 오랜 삶의 지향점과도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으면서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생활과 영역을 추구했던 하루키와 그를 선망하는 한 사람을 이어주는 문장이 아닐까.


나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너무나도 추상적으로 생각해왔던 것 같다. 여느 드라마에서 식상하게 들릴법한 '나다운 게 뭔데'라는 외침처럼 뭉뚱그려진 답이 없어 보이는 그런 것. 하루키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단연 삶의 형식에서부터 출발하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이었다.


"나는 TV도 안 보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운동도 하고 되도록 바람도 안 피우죠. 이런 건 결국 형식일 뿐이지만 이 형식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쪽)


일상생활에서 그가 정해놓고 충실히 지키는 법칙들이 그를 진정한 자기 자신의 삶으로 인도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그다운 생활로서 그 법칙들을 지배했다는 표현이 맞아 보인다. 왜냐면 그는 그것을 상당히 즐겼으니까.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형식을 발굴해야 할 것이지만 나답게 산다는 것이 아주 작은 일상에서부터 지켜진다는 것. 때로는 내용보다도 형식 자체가 어떤 내용을 담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독서에서 얻은 수확이랄까.


 책을 다 읽으니 임경선 작가가 책머리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좋아해주실 독자는 나의 가장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주실 거라고 절로 믿게 된다'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과의 대인관계에서 결코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에 대한 시선은 따뜻한 그런 사람. 그녀가 지향하는 삶과도 아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임경선 작가에게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놓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녀의 가치에 적절한,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본인의 삶에 치열하게 성실하며, 또 나답기 위해서 용기를 내고 다른 사람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현철    현재 임 작가님의 자유의 정의는 뭐예요?

경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용기의 구현과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하는 거요. 자유를 얻으려면 항상 대가를 철저하게 치러야 해요. 그것도 100의 대가를 치러야 1의 자유를 겨우 얻을까 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100의 대가를 치르고 100의 자유를 얻는 게 아니에요.

-《태도에 관하여》본문 중.




후기나 못다 한 이야기는 @writerL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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