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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Dec 10. 2015

아이야, 봄을 기대해도 돼.

겨울에서 봄으로 내딛는 20대의, 지극히 개인적인 성장기

어제, 조카가 수시 논술 전형으로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껏 기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축하해주고 왜인지 벅찬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면 입학 전까지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로망을 쟁취한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골든 타임이랄까. 로망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부터 로망으로서의 자취는 조금씩 사라져 버리기 시작하니 말이다.




나도 수시 논술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간 케이스다.  

그때는, 아니 매우 최근까지도 다름 아닌 논술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한 일은 오로지 운이 좋아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치하라도 하려 치면 손사래부터 내저었다. 논술 자체가 내게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었다. 논술 대비를 할 때에도 제대로 써내지 못한 적이 부지기수였다. 정시 논술처럼 전체적인 개요를 짜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서론과 본론, 주장과 근거의 순서를 몇 번이고 뒤집다 보면 결론은 지구 반대쪽 땅 끝보다 요원해 보였다. 그러다 '운이 좋아' 마침 연습했었던 주제를 만났고, '운이 좋아' 처음으로 제한시간 내에 끝까지 막힘없이 써냈다... 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내가 지닌 것들을 다시 찬찬히 들여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운이 다였을까?


나는 결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은 약점이었다. 주술 일치라든가 이론적인 결함을 가까스로 면하는 정도만 갖추었을 뿐, 글을 이끌어갈 능력에는 자신이 없었다.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글 하나도 제대로 못쓰는 엉터리 학사.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나였다. 주위에 생각도 견문도 넓은데다 달필가인 친구들이 많아 나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에도 내가 잘은 못 쓰지만 한 번 도전이나 해보겠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적어도  한두 분은 꼭 구독을 해주시고 가끔은 좋은 댓글도 달렸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지만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이 아닐까, 그럼 나는 글을 꽤 괜찮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주 명필에는 닿지 않더라도 '재능' 정도는 있다고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그린 라이트를 켜두기로 했다.


열아홉의 이맘 때, 분명 고사장에서 내가 써낼 수 있는 좋은 주제를 만난 것은 운이었다. 하지만 그걸 끝까지 논리 정연하게 '써낸' 주체는 바로 나였다.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다른 시간, 절패감을 느끼며 논술과 씨름하던  그때에도 비록 요령이나 방법을 잘 몰라 오래 걸리고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분명 재능이 발견되지 않은 채 있었다,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에게 가장 가혹한 나에게, 봄으로의 빗장을 아주 조금 더 열다.

-2015년 겨울 어느 날.





후기나 못다 한 이야기는 🐦@writerL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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