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E리제 Dec 31. 2016

서른 즈음에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남기는 글

참 다사다난한 20대였다. 

돌이켜보면 내 20대는 온통 실수투성이였다. 가끔 '퐁' 하고 스치는 기억들은 죄다 어쩌면 그렇게 낯부끄러운지. 당시에는 부끄러운지도 어쩌면 그렇게 몰랐는지. 그렇게 20대의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말았다.


도망치듯 살아왔다. 제일 중요한 문제들을 앞두고 등 돌리고 누군가의 뒤에 숨기 바빴다. 세월에 내 숙제를 맡기기 일쑤였지만 시간이 그걸 받아줄 리 만무했다. 나 자신을 다잡겠다며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도 하였으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대로는 자기변명하는 글밖에 못쓰겠다는 사실을. 오직 현재만이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게 허락해 줄 수 있었고, 나는 졸업한 지 4년 차인 공시생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외면한 채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20대에 제일 잘 한 일은 아무래도 내 남편을 만난 일이다. 

나는 예전부터 내 짝이 될 사람은 자신 있게 본인의 삶을 경영해나가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주도는 못하더라도 서포트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것도 그 사람에게 기대겠다는 극히 이기적인 로망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내 이상형을 만났고, 그는 내가 조용히 침잠해가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나를 현실로 몰아붙인다. 나를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다보게끔 떠민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살면서 의문을 가졌던-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당연한- 많은 부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길 마다하지 않는다. 결코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고마워 당신은 내 삶의 열쇠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열쇠는 결국 당신의 것이고 본인은 길잡이일 뿐이라고 했다. 


오로지 남을 위해 내어주어야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내게 베풀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게 내 부모님이고 내 남편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위험하게도 나는 도움받는 일을 합리화하려 모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결정적 순간 남편 덕분에 나는 무장해제할 수 있었다. 나는 독립해야만 했다. 그걸 20대가 다 끝나갈 때쯤에서야 겨우 작심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 글은 나의 참회록이다.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자면 참 한결같기도 참 다르기도 하다. 좋은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이제는 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건 바로 그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번도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영웅이 될 차례이다. 평생 걸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걸음마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이제 조금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내년에는 부디 펄펄 날아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꿈꾸던 30대를 서툴더라도 열심히 만들어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