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E리제 May 18. 2022

네모난 바퀴

재능을 넘어서는 재능, 메타-재능을 찾아서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일차원적인 사람이었다. 일차원적인 사람에서 벗어나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철학과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나다운, 일차원적인 선택이었다. 레포트가 쓰기 힘들었던 나는 훗날을 기약하며 레포트를 요구하는 강의는 듣지 않았다. 4학년이 되면 저절로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4학년씩이나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란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어려서부터 나는 천재 캐릭터들을 많이 좋아해왔다.  

슬램덩크의 강백호, 원피스의 루피에게 깊이 빠졌다. 현실 인물로는 김연아나 보아에게 열광했다. 어떤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그들을 동경하고 부러워마지 않았다. 나와 공통점을 꼽아본다면, 그들도 일차원적이었다. 차이점은 내가 동경했던 그 대상들은 단순함을 본인에게 주어진 벽을 하나하나 깨부수어 나가는 데 발휘했다는 점이다. 오로지 우직함으로 끝없는 노력과 연습을 통해서. 예전의 나는 그들은 오로지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나한테는 특출한 뭔가가 없기 때문에 이렇다할 일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핑계삼았다. 깊이 감동하며 보기는 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니 관망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조차 쉬워보였던 것 같다.


부러움이나 질투만큼 게으른 감정도 없다. 결과물에 앞선 과정이나 노력을 고려하지 않을 때 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어떤 사람의 멋짐은 뿅! 하고 나타난 것 같이 보인다. 같은 반 친구, 후배였는데 쟤는 잘 나가네. 그런데 나는 왜 이러지. 그러므로 부러움은 오만한 감정이기도 하다. 노력의 힘을 믿지 않는 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내가 그만큼 잘 되기를 당연히 바라는 마음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재능을 넘어서는 재능

생각이 바뀌었다. 성실함이 최고의 재능이다. 꾸준한 노력, 이것만이 모든 성취의 근본이다. 가능한 것들은 실현시켜주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어떤 사람은 복권이 당첨되는 것이 꿈이라면서 복권은 한 장도 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하지를 않아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된다'는 환상을 남기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평생을 그런 환상 속에서 살아왔다. 누군가 자신의 바퀴를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면, 나는 그저 가만히 쉬고있었다. 누군가 열심히 움직이면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면, 나는 그들이 일고 간 바람을 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스쳐지나가고 내가 쥘 수 있는 거라곤 저절로 굴러다니는 낙엽뿐이었다. 내가 허상함을 느끼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이었다. 알겠다. 세상이 왜 내게만 춥고 외로웠는지를. 왜 내 바퀴만 네모난 채로 남아있었는지를. 네모나서 굴릴 수 없던 것이 아니라 굴리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동그라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나이 40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살면서 쌓아온 삶을 대하는 태도나 성격 같은 것이 얼굴에 묻어나기 때문일 거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다 문득, 이제는 시간을 허비해도 될 청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영영 굳어지겠다. 꿈꾸지 않았던 것들을 꿈꾸고 불가능하다 여겼던 것들을 건드려 볼 시간이 왔다. 살 날들은 창창하고 이대로 죽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우니까. 바퀴를 굴릴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땐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 알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