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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Mar 26. 2022

그 땐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 알겠다.

부모가 되어 문득 부모를 이해하는 일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는 종종 내가 어렸을 적의 내 부모님을 겹쳐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겠는 장면들이 튀어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왜 자기도 하지 못한 일들을 자식들은 다 해낼 거라고 믿는 건지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무리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제 막 돌 지난 우리 아들이 벌써 나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나누어줄 줄 알고, 사람들에게 무언가 나누어주는 것으로 호감을 표현하고, 배운 대로 행하고, 부모에게 뭐든지-새로운 퍼즐을 맞추었다든지 하는 것까지도- 와서 알려주는 모습들을 보며 이 아이는 나보다 낫다고, 훨씬 나을 거라고 확신까지도 절로 하게 된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우리 엄마는 내 교복을 버리거나 물려주지 않고 한 벌 한 벌 드라이를 맡긴 후 다림질까지 정갈하게 해서 고이 간직하셨다. 이제 입지도 않을 거, 왜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면 "나중에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자료로 쓰이게 될 수도 있잖아."라고 대답하셨다. 그 땐 그냥 현실성 없는 허황된 꿈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었는데 이제 와선 그 장면이 날 울린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를 진정으로 믿으셨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얼마나 예쁘고 빛나는 나를 꿈꾸셨을까. 그 꿈을 꾸며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막상 나는 부모 속도 나 자신도 모르고 뭘 할 수 있는지 탐색할 생각도 못했다. 막연한 패배감과 막막함 속에서 20대 내내 허송세월 방황했다. 어찌어찌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최소한의 사람 도리는 겨우 하게 되었지만 이 정도밖에 이루지 못한 내가 송구스러울 뿐이다. 물론 부모님은 그런 나를 함부로 나무라는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이렇게 아까운데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타셨을지 지금에서야 짐작해본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 아들은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질리지 않고 매일 더 예쁜지 신기하다. 그런데 나도 부모님께 그런 아이였고 그런 자식이라는 것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그런 대상이 되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최근에 친정집에 가서 내 옛날 앨범을 본 적이 있다. 20대까지만 해도 내 얼굴은 평균이거나 그보다 조금 못난 편이라 생각했고, 예전의 내 사진을 보면 그냥 내 얼굴이라고만 생각했지 예쁘다거나 맘에 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들을 낳고 보니 예뻐 죽겠는 아들의 얼굴과 많이 닮은 내 어릴 적 얼굴이 새삼 예뻐보였다. "나 예뻤네~" 하고 말하자 어머니가 살짝 흘기셨다. "그래 너 예뻤어야~." 아들이 좀 더 크게 되면 이것 또한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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