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SE리제 Oct 27. 2019

투덜이의 비밀

일상적인 형태의 권력에 대하여

일상적인 형태의 권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구나 피부로 느끼며 살지만, 정작 가지고 있는 이는 딱히 인식하지 않는/못하는 종류의 것들이다. 


지난 7월부터 근무 부처를 옮기면서 근무나 업무 양태가 많이 달라졌다. 급증한 업무 스트레스로 나는 거의 종일 투덜댄다. 안다. 자주 그러면 주변에 잘 일하고 있는 동료에게 피곤만 증가시킬 게 뻔하다는 사실을. 또 그런 내가 싫어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도 나는 투덜이다. 웬만하면 거의 그런 내색을 비치지 않는 옆자리 동기는 내가 그럴 때마다 대리 만족한다고 말하지만(정말 착하다.) 분명 내 일이 내 옆의 동기보다 더 힘든 것도 아닌데 왜 나만 투덜댈까. 쉽게 말하면 사회적 성숙도일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사회적 성숙도'라고 퉁치기엔 찜찜한 감이 있다. 


나는 아무래도 누군가의 눈치를 별로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제일 먼저는 가정환경이 주효했을 것이다. 늦둥이 외동딸로 자란 나는 '외동은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눈치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눈치가 그냥 만들어지던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만들어진다. 형제자매가 있는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데 내가 볼 땐 그러면서 어떤 사회적인 선을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또 외동으로 자라면 아무래도 양보하고 희생하는 경험이 적다. 조금이라도 내 것을 빼앗기거나 그것을 감수해본 경험치가 거의 없다.


내가 키가 크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같은 또래는 물론이고 선배 오빠들도 내 친구한테는 쉽게 장난을 걸어도 나한테는 장난을 쉽게 못 쳤다. 대학에 입학했을 땐 나보다 키 작은 (대다수의) 남자 선배들은 나를 만나면 뒷걸음을 치거나 나보고 멀리 서라고 했다. 키가 작은 여자 친구들이 키가 작고 여자라서 무시받은 이야기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키가 작아서 무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남편도 키가 큰 편인데,  굳이 본인이 시비를 트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매너 없이 구는 사람을 보면 서슴없이 대선다. 들리도록 이야기를 한다거나. 이 사람이 키나 덩치가 크지 않았어도 과연 스스럼없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아니다'이다. 여차하면 힘으로는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 없이 그렇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도 내가 이름 있는 대학교에서, 운동권 성향의 대학을 나왔다는 것도 아마 모르지만 내 힘 중 하나일 것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주장을 하는 데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영향을 실제로 잘 '모른다'는 점이 더더욱 설득력을 더하는 지점이다. 권력을 지닌 자는 굳이 그 힘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동시에 누리기 때문이다. 


'눈치'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권력이 있는 자는 눈치를 보지 않아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 팀장이 팀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수월하게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일상적인 권력은 보통 '말하기 좀 애매한' 부분에서 쉽게 그리고 끊임없이 작동한다. 


내 옆자리 동기는 삼 남매의 둘째로 자랐고, 평균 키거나 평균보다 조금 작은 편이고, 입사 전 회사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사람마다 성향도, 생각도 성격도 다르고 단순히 이것만으로 추측하기는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