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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Apr 20. 2019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않는(X), 못하는(O)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취직을 준비할 당시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게 어쭙잖았고, 취직을 하고 나서는 더욱 글을 쓸 깜냥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훨씬 더 좋은 문장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내 발언은 망망대해에 작은 돌 하나 던지는 것보다도 미미하다. 내가 처한 상황이 독특하다거나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얼마 되지 않아도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틈틈이 빚을 갚다가도 정작 직장에 가면 일하기 싫어 괴로워하는 소시민에게 별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평균보다 생각이 깊거나 많은 것도, 관심사가 넓거나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다. 경험이 많거나 다양하지도 않다. 공감을 표시하거나 리트윗 하거나 공유하거나 스크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그간 글을 쓸 주제가 딱히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있다 하더라도 글을 쓰다 보면 논리적인 척하는 내가 민망해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도저히 될 수 없으므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거나 아는 것이 적으면 확신한다는 말, 그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걸 깨달아버린 이상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대신 글을 조금씩이라도 읽어보려는 의무감을 가지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속죄를 하는 중이다. 놀기 좋아하고 게으른 천성을 이기지 못하는 탓에 순조롭지는 않지만 맥이 끊기지는 않도록 노력 중이다. 지금은 어떤 책을 읽어도 단편적인 감상 외에는 긴 글로 남기기가 어렵다. 텍스트와 상호작용을 하기보다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미도 뜻도 모르겠기도 하고, 뭔가 느낌은 있지만 말로 표현이 안 되기도 하면서 일단은 욱여넣고 있다. 이 많은 텍스트와 책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까. 그때가 되면 조금은 떳떳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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