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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iantak Nov 27. 2020

리더의 사과는 무능함을 의미하는가?

사과는 회복의 힘을 가진 행위이다

진정한 리더는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절대 실수를 감추지 않는다. 최고의 교훈은 실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피스크


자존심은 내려놓고

초급장교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소대원을 이끌고 상급부대에서 부여한 목표로 향해 가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서 마음을 졸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아나갔다. 얼핏 보아도 도착할 시간이 되었고 지형도 비슷해 보였다. 소대원을 계획대로 펼치고 자리를 잡았다. 한 참 뒤에 무전이 왔다. “귀소 어디인가?” 나는 계획된 지점에 도착해서 임무 수행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계획된 지점보다 한참을 못 미쳤고 완전히 착오를 하였다. 소대원들을 다시 집결시켜 출발해야 했다. 이 때는 정말이지 어둠 속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다행이지 어디로 숨고 싶었다. 소대원들을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웠다. 자신감도 사라졌다. 리더의 판단 실수로 고생하게 된 소대원들에게 훈련 복귀 후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소대원들 앞에서 사과하려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소대장인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사과를 안 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점점 소대장과 소대원의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는 계기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실수에 의해 고생시킨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 후 내 마음도 가벼웠고 소대원들을 보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똑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는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소대원들의 마음이 내게 더 가까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모르는 길은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제저녁 나는 사람도 아니었네

누구나 실수는 하게 되어있다. 특히 리더는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팔로워들과의 관계의 끈 강도가 결정된다.

남북전쟁 당시 버지니아 북부에서는 치열하게 반격해 오는 남군과의 싸움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수도방위 경비를 담당하던 스콧 대령이 링컨 대통령을 찾아왔다. 대령의 아내가 아픈 남편을 간호하러 워싱턴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증기선 충돌사고로 사망한 직후였다. 대령은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대장에게 휴가를 신청했으나 급박한 전쟁터에서 그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령은 반드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국방장관에게 휴가를 요청했으나 이번에도 거절을 당했다. 이제 방법은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토요일 오후 마지막 접견객으로 집무실에 들어선 스콧 대령. 링컨 대통령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대통령은 대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

“잠시라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나? 밀려드는 요청에 조금도 머리를 식힐 수가 없어. 왜 이따위 문제로 여기까지 오나? 인사과에 가란 말일세. 서류나 휴가 문제는 인사과 담당이잖아.”

대령이 지금까지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면 못 가는 거지!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국방장관이 어련히 보내 주지 않았겠나? 위계질서와 명령은 지키라고 있는 것일세! 지금 나보고 장관의 결정과 규칙을 번복하라는 것인가? 그러다 중요한 작전이라도 망치면 어떻게 할 텐가? 지금 내가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처럼 보이는가? 눈코 뜰세 없이 바쁘다네. 그깟 휴가 문제 따위로 낭비할 시간이 조금도 없단 말일세. 여기까지 오면 내가 동정이라도 해 줄줄 알았는가? 자넨 지금 전쟁 중인걸 모르나? 아내가 죽어서 힘든 건 자네뿐만이 아니네. 모두 힘들지만 꾹 참고 견디고 있어. 동정이나 사랑 타령은 평화로운 때나 하는 걸세.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그렇게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을 시간이 조금도 없단 말일세. 우리가 할 일은 싸우는 것 하나뿐이야! 자네 같은 사람이 어디 한 두명인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질 걸세. 그렇다고 다들 자네처럼 나한테 와서 하소연을 하는가? 나는 지금 내 일만으로도 벅차네. 인사과로 가져가게. 휴가 문제는 인사과에서 처리하라고. 그리고 인사과에서 안 된다고 하거든 그냥 참게.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그래야 해. 지금 전쟁에서 이기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

대령은 크게 좌절하여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모든 이의 운명이 좌우되는 전쟁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의 감정과 분노를 짜증 섞인 말투로 대령의 아픈 마음에 상처를 준 대통령은 스스로의 실수에 대해 고민하고 대령을 찾아갔다. 다음 날 새벽녘, 대령은 막사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문 앞에는 대통령이 서 있었다. 대통령은 대령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스콧 대령, 어제저녁 나는 사람도 아니었네. 정말 할 말이 없네. 어제 나는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네. 그렇다고 해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아내를 잃어 실의에 빠진 사람을 그렇게 험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밤새 후회하면서 뒤척이다가 용서를 청하러 이렇게 왔네.”

그렇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며 국방장관에게 연락해 부인의 장례식에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차에 태워 증기선까지 대령을 배웅해 주었다.


대통령이 대령에게 사과를 했다고 대통령이 무능한가? 결코 아니다.  마셜 골드스미스는 '사과'에 대해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신비한 마술이고 치료법이며 회복의 힘을 가진 행위’라고 하였다. 리더의 경우 팔로워들의 마음을 순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리더십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리더의 실수에 대한 사과는 리더십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직위와 자존심의 등 뒤에 숨어 버리는 사과는 리더에게 독약과도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팔로워들의 마음이 역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이다. 실수를 남발하면 안 되지만, 실수했을 때는 팔로워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링컨 대통령이 스콧 대령에게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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