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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r 07. 2019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도서관의 책은 책장이 아니라, 사람들 손에 있을 때 가장 가치있다.

처음부터 서점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서점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애서가라는 말조차 자칫 조심스럽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처음에 생각한 건 도서관이었다.

책을 만나는 것도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어엿한 만남이라고 믿고 있는 나에게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런 가장 멋진 장치는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도서관."

왜 세상에서 제일 작은가? 단 한권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한권을 골라, 정성스럽게 책 비닐에 싸고,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 번째 빈 페이지”(작가들에게 서명받는 페이지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르려나?)에 31명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리스트를 출력해 붙이고, 31번째에 내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기록한다. 그리고 기증한다. 어디에? 세상에.


그렇다. 말 그대로 세상이다.

기존의 도서관은 책이 머물러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의미는 머물러 있는 책으로 인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안에서 혹은 도서관을 떠나 누군가에게 읽혀짐으로써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사람이 그 순간 만나는 책은 결국 한 권.

어쩌면 한 권의 책만으로도 도서관은 가능한 것이 아닐까?


SNS에 #세상에서가장작은도서관 이라는 태그를 달고, 그 책을 빌려가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

누군가 신청자가 생기면 만나서 그 책을 전달한다. 택배로 보낼 수도 있지만, 책과의 만남만큼이나 사람과의 만남도 가치 있으니까. 커피한잔 하며 함께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아까 말한 그 첫페이지에 붙인 대여리스트 1번에 그의 신상정보를 기록한다. - 이건 하나의 룰이다.

책 한권이 하나의 도서관이니까 도서대여에 대한 정보기록도 그 책 한권 안에서 해결해야 하니까.


그렇게 한 권을 빌려 주고나면 일단 그 책은 나의 손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책을 전해 받은 사람은 다시 자신의 SNS에 책을 빌려줄 그 다음 사람을 찾는다. 2주 안에 책을 다 읽고 그 다음 사람에게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책을 전달한다.


그렇게 30명을 거쳐서 다시 나한테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기약도 없이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지난 어느 날 30번째 사람에게 전화나 문자가 온다면 나는 정말 설렐 것 같다. 기분 좋게 그 책을 받을 약속을 잡고 그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함께 읽은 30명의 사람들이 남긴 연락처로 한 분 한 분께 문자를 보내 독서모임을 제안하는 상상을 해본다.


몇 명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함께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 만남이 얼마나 설렐까 생각해 본다. 용기를 내어 출판사를 수소문해서 작가님께도 연락드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책을 만난 사람, 그 책과 이어진 사람들의 삶의 파동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세상을 바꾼 어떤 위대한 변화(movement)도 결국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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