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채우는 일상의 기쁨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있겠냐마는 나는 조금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클래식음악을 좋아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처음 들었을 때 '환상적이네요'라고 말했다고 어머님이 종종 말씀해주시곤 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는 고1 때 같은 반 친구였는데, 그 친구와 친해진 계기도 클래식 때문이었다.
소풍을 가서 친구들은 바닷가를 뛰어다니면서 놀 때, 해변 뒤쪽에 혼자 서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서로 처음에는 뻘쭘하게 다가가서 무슨 음악 듣고 있냐고 물었는데, 그때 나는 쇼팽을, 그 친구는 베토벤을 듣고 있었고, 서로 신기해하며 그때부터 얘기도 많이 하고 더 친해진 계기가 되었다. 그 사이에 나는 음악적 취향이 훨씬 더 다양해졌지만, 유독 그 친구를 만날 때면 클래식과 재즈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도 그 친구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을 LP판으로 들려주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음악과 대화에 취하는 밤이었다.
책방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음악은 공간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 딱딱한 기획 사무실 한쪽 벽에 책장 2개를 두고 나 혼자 책방 1호점, 2호점이라고 우기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혀 책방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공간을 바꾸고 책장의 위치를 옮기고, 결정적으로 재즈음악을 틀어놓기 시작하자 정말 책방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커피까지 내려주면 책이라는 풍경에 음악이 더해지고, 커피 향이 얹어지면서 특별한 공간의 변신이 시작되곤 했다.
오늘 아침엔 우연히 유튜브에서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들었는데, 원래도 좋은 곡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 듣고 싶어서 여러 버전을 찾아서 듣다 보니 여성 성악 버전이 많이 나왔다. 내가 꽂힌 건 비올라로 연주하는 영상이었기 때문에 현악기 버전을 여러 개 찾아들어 보았다. 그리고 라슬로 페뇨라는 첼리스트의 협연 영상을 찾기에 이르렀다. 연주가 좋아서 찾아보니 2004년에 파블로 카잘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이후 프란츠 리스트상까지 받은 유명한 첼리스트였다.
이후 알고리즘의 안내에 따라 지금은 Jacob's Piano라는 채널에서 피아노 연주영상을 보며 글을 쓴다.
음악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맷(마크 러팔로)이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에서 하는 대사가 있다.
You can tell a lot about a person by what's on their playlist. Thats what I love about music.
누군가 듣는 음악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어. 그래서 난 음악을 사랑해.
One of the most banal scenes, is suddenly invested with so much meaning. All these banalities.
가장 평범하고 따분한 순간마저도 음악이 깃들면 갑자기 의미를 가지게 되거든.
They're suddenly turned into these beautiful, effervescent pearls. From music.
그 모든 평범함이, 어느새 반짝이는 진주처럼 아름답게 변하는 거야. 음악 덕분에.
영화와 일상이 다른 이유는 딱 2가지인데, 편집과 배경음악이다.
인생의 러닝타임은 영화와 달리 우리 마음대로 편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배경음악만큼은 내 마음대로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엔 잠시 필릭스의 목소리에 꽂혀서 스트레이키즈의 음악을 듣기도 했고(여자분들은 심쿵 주의), 어젯밤에 딸과 함께 에스파의 신곡 "Dirty work" 영상을 같이 보기도 했다. 혼자 차분히 책을 읽을 때는 빌 에반스나 에디 히긴스의 재즈음악을 듣고,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는 요즘 핫한 우디의 Drowning이나 GD의 홈스윗홈 같은 최신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찰리푸스나 애드 시런 같은 팝음악을 듣기도 하고.
나는 종종 이곳저곳을 다닐 때마다 여행 가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는데, 어쩌면 그건 내가 그때 들었던 음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보니 나라는 사람이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끝없이 삶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음악처럼 어떤 순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오늘도 음악은 내 삶의 배경음악이 되어, 나의 평범한 일상을
때로는 다큐멘터리로, 때로는 액션영화로, 때론 로맨스 영화로 바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