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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바쁨의 미학

알다시피, 바빠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by 변대원

요즘 무척 바쁘다.

3월부터 논의되다가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모 화장품 회사의 컨설팅을 진행 중인데, 워낙 대표님과도 잘 통하고, 가능성이 많은 회사라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배는 일이 많아졌다. 기획의 범위가 늘어났고, 더 깊은 생각의 밀도를 요구하는 일들을 하나씩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미리 연락을 받지 못해 장기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인재원 강의를 뒤늦게 연락받고 진행하게 되어서 생각지 못했던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강의는 그 시간만 최선을 다해 할애하면 되지만 인재원 글쓰기 강의는 조금 특별하다. 그래서 일반 강의보다 몇 배 이상의 에너지가 요구된다. 함께 글을 쓰고, 그런 과정을 통해 참여하는 작가님들의 실질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여러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요즘 다시 매일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그 수업 덕분이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면에서는 여지가 없다.


그러고 보니 또 4월부터인데, 몇 년간 생각만 하고 정작 실천하지 못했던 출판사를 시작했다. 사이책방이 그랬던 것처럼 완벽하고 멋진 시작을 하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러니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해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5월에 2권을 출간했고, 6월엔 출간기념회도 진행했다. 지금 편집을 마무리하고 있는 책도 6월 말까지는 출간될 예정이다.

이 글을 다 쓰고, 국립중앙도서관 ISBN 납본시스템에 접속해서 신간의 ISBN을 신청해야 한다. 코드가 발급되면 책의 표지 뒷면에 반영하는 작업을 디자이너에게 요청해야 한다. 어제는 다음 책 작업을 해야 할 작가님과 미팅일정을 논의했고, 지금 마무리해야 하는 작가님들의 최종원고 점검을 부탁했다.


5월에는 집을 이사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무려 15년간 살았던 집에서 처음 이사하는 거라 만만치가 않았다. 미리 챙겨야 할 것들, 이사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정말 끝도 없다. 2달째인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주말에는 오래된 벽면 콘센트를 일부 교체했고, 교체하면서 생긴 틈을 다시 다음날 실리콘을 사 와서 마감해 줘야 했다. 그런데 이번 달엔 사무실을 이사한다. 일부는 이사했고, 일부는 업무상 여전히 기존에 쓰고 있는 사무실을 이용 중이다. 역시 이달 말까지 차츰 진행되면서 마무리되리라 본다.


사무실을 이사하는 이유는 신규법인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을 보편적 사고(Universal Insight)라고 지었다. 기존의 개인 사업자로 운영했던 인사이트브릿지(Insight Bridge)의 확장된 버전이다. 일부 컨설팅 업무와 책방, 출판사는 개인사업자로 우선 운영하고, 향후 확장되는 사업은 신규법인에서 진행할 생각이다. 조금 독특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오늘은 통신대리점 운영을 위한 교육에도 다녀왔다.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업무 및 용역 계약서를 수령해서 작성했고, 틈틈이 새 사무실에 필요한 책장과 액자 등의 인테리어 소품들도 구입했다. 신규 직원 채용을 위해 몇 달 전부터 눈여겨보던 근처 매장 매니저에게 정중하게 면접을 제안했고, 다음 주에 서류검토 후에 면접일정을 잡기로 했다.

이동 중에는 강의 과제로 작가님들이 올리는 카페 글을 읽는다. 한 번만 읽어서는 충분히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어서 가볍게 읽고 이후에 사무실에서 조금 더 조용히 시간을 내서 읽으며 댓글을 단다.

마침 예상치 못하게 6월에 신규강의를 하나 더 진행하게 되어서 강의준비도 해야 한다. 역시나 카페에 후기나 실습을 올리기 때문에 한분 한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답변을 드리고자 애쓰고 있다. 온라인 강의이긴 하지만, 전원 다 오프라인 강의에 참여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별도의 현장실습도 준비하고 있다.


요즘 일이 많이 바빠지면서 책방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못 가는 것 같다. 그래도 책방은 늘 나의 안식처 같은 곳이라,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방문하려 하고 있고, 가서 화초에 물도 주고,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은 책들도 정갈하게 정리한다. 책방을 이용하는 주민들을 위해 1-2주에 한 번씩은 비치된 책의 위치를 바꾸고, 혹시라도 누군가 새로운 책과 멋진 만남을 할지 모르는 0.1% 가능성을 대비한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은 가족들의 저녁을 챙긴다. 직접 요리할 시간이 없을 때는 부득이 배달을 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아내가 재료를 사놓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학원 다녀오기 전에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준비한다. 종종 딸이 심부름시키는 과자를 사가기도 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비빔밥 재료가 될 나물들을 시장에 들러 사가기도 한다.


작년까지는 책을 읽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면, 올해 들어서는 책에서 배운 대로 사는 시간이 월등히 늘었다. 그동안 워낙 집착하듯 책을 많이 읽으려고 했던 탓에 독서량이 줄어드는 것이 한 편으론 무척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안 볼 것도 아니니까 걱정은 없다. 결국 책을 읽는 목적은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니까 어쩌면 올해는 내가 그동안 늘 주장해 왔던 독서의 마지막 단계 "행독(行讀)"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AI를 활용하는 방법들을 일부 깨우치면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얻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이 인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와중에 늦잠을 자기도 하고, 오늘처럼 잠깐 이동 중에 서점에 들러 그동안 못 봤던 신간들을 훑어보기도 한다.

오늘은 위례를 다녀왔는데, 약속시간 20분 전에 도착해서 근처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6천원짜리 김치볶음밥이 정말 맛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면 그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이를 테면 멀리 이동하는 경우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편하게 앉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버스에 앉아서 유튜브도 보고, 밀린 톡이나 글도 본다. 또 일정 중에 식사시간이 포함되어 있으면 가면서 근처 식당을 찾아보고 안 가봤던 새로운 음식점이나 미리 저장해 둔 맛집을 찾아가서 먹기도 한다. 그럴 때 듣고 싶었던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뉴스를 찾아보면 딱이다.

사무실에서 해야만 하는 통화는 일정을 잡고 한데 몰아서 소통하려고 하는 편이고, 이동 중에 대화해도 되는 경우에는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걸어가며 전화를 하기도 한다.

지금처럼 일정이 바빠서 글을 못쓴 날은 커피 한잔 사들고 사무실에 돌아와 천천히 글을 쓰면서 휴식을 즐긴다.


언젠가 그런 글을 쓴 적 있지만, 바쁠 망(忙)은 마음(心)을 놓쳐버린(亡) 상태라고 배웠다.

즉, 물리적으로 바빠도 마음만 놓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여유 있게 지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바쁘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실상은 바쁠 때 더 많은 약속을 잡게 되고, 더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

통제 가능한 바쁨은 시간을 쪼개어 활용하는 단위가 정교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말 내내 시간이 여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아무것도 한 거 없이 흘러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바쁠 때는 내가 내 시간을 충분히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 사이사이의 틈을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바빠서 못한다는 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말은 사실 거꾸로 된 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컨트롤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바쁨에 휘둘리는 것뿐이다.


지난 4일 중 3일을 야근(새벽 2시 퇴근) 한 탓에 요즘 수면량이 많이 부족해졌다.

지금 내 기준에서는 잠을 많이 못 잔다는 것도 핑계고,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도 핑계라고 봐야 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면 그만큼 몸의 컨디션이 더 좋아지고, 컨디션이 좋아지면 집중력이 더 높아지고, 잠도 더 잘 자는 식의 선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바쁜 시절을 어떻게 더 멋지게 극복할 것인지, 또 그 속에서 어떤 여유와 낭만을 누릴 것인지는 온전히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은 마음이라고 했던가.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놓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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