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이기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내는 늘 그렇게 말한다.
내가 눈이 높았으면 당신이랑은 결혼 안 했을 거라고.
나도 안다. 나는 아내의 외적 취향과 거리가 멀다. 뭐 그래도 뭔가 있겠거니 하고 결혼했는데, 그런 믿음마저도 살다 보니 틀린 것 같아서 후회가 된다고 한다. 괜히 아내에게 미안해진다.
그런데 외부에서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또 어떤 곳에 가면 대표님은 참 인물이 좋으시네요 하며 칭찬받는 일이 있다. 그 역시 안다. 90% 이상은 빼고 들어야 한다는 걸.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대부분이라는 걸.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집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은 다 나 멋지다고 하는데 당신은 왜 그럴 몰라줘라고 이야기하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조금은 철이 들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40대 중반을 넘어가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쯤 되고 보니 그런 칭찬이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된다. 한동안은 그 묘한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관찰하면서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있지 않은가?
나는 뭔가 그럴싸하고 멋지게 나온 사진 같아서 "이거 잘 나온 거 같지 않아?"하고 물어보면, 생각보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런데 정작 약간 바보처럼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는 "오~ 이거 잘 나온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경우 말이다.
즉, 나는 나의 외모를 볼 때 외적인 부분만 보는 경향이 있다. 마치 TV나 잡지 속에 근사하고 폼나는 장면 속 모델들의 외모나 표정 같은 것이 막연한 기준이라고 할까?
그런데 타인을 볼 때는 어떤가? 특히 아는 사람을 볼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한 개성이나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 사진을 보면 "잘 나왔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분위기 있게 잘생기고, 예쁘게 나온 사진도 있겠지만, 그건 어딘가 그 사람스럽지 않기 때문에 "잘 나왔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득 그런 인식의 차이가 왜 생기는지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외모는 그저 외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얼굴과 체형, 옷차림(패션), 자세, 표정, 자신감, 말투 등이 어우러져서 그 사람만의 개성을 만든다. 사실상 시대에 따라 그리고 문화에 따라 미의 기준은 다르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예쁘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서구권에서는 평범한 동양인으로 전략한다. 대신 뮬란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쌍꺼풀이 없고, 눈이 살짝 찢어진 듯한 느낌의 외모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훨씬 더 예쁜 사람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우리 눈에는 금발에 주근깨가 있는 마치 디즈니 공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을 예쁘다고 보지만, 실제 북미나 유럽에서는 너무 흔한 얼굴이라 정작 본인들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외적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내적 아름다움은 좀 다르다. 예를 들어 얼굴이나 체형은 타고나는 거라 바꾸기 어렵지만, 자세나 표정, 말투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생활에서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경우 대부분 외적인 장점보다 내적인 장점을 훨씬 더 크게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외적인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키가 작아서 고민, 얼굴이 커서 고민, 눈이 작아서 고민, 커서 고민, 목소리 톤이 높아서 고민, 낮아서 고민. 그런 고민이 시작된 이유는 하나뿐이다.
다름을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가장 큰 효용 중 하나는 세상은 정말로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너무나 작은 일부의 세상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인식을 통해 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다름 자체가 저마다의 개성이자 아름다움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내적 성숙과 내적 아름다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말하듯이 외적인 단점이 많다. 두상이 크고, 다리가 짧고, 살이 쪄서 체형이 썩 보기 좋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즉, 외적인 부분에서는 유일하게 다이어트와 피부에만 관심을 가지는데, 둘 다 내 노력여하에 따라 바뀌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180이 넘었으면 좋겠고, 다리가 조금 길었으면 좋겠다. 머리도 조금 작았으면 좋겠고, 머릿결도 찰랑찰랑한 직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어릴 때부터 어깨가 꾸부정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는 내가 조금 신경 쓰면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 의식할 때마다 어깨를 활짝 펴고 걷는다. 아직도 완전히 딱 자리 잡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깨와 허리 목의 각도 같은 미세한 자세가 그 사람의 인상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낀다.
내 목소리는 톤이 좀 높은 편이다. 그래서 톤이 낮은 목소리가 부럽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 목소리는 내가 익숙해져서 이렇게 쓸 뿐이지, 사실 다양한 음역대의 목소리가 공존한다는 걸 안다. 실제로 교회 성가대에서 한동안은 베이스를 했었다. 심지어 테너보다 베이스가 훨씬 더 잘 맞았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높은 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강의를 하면서도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내 목소리가 좋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물론 절대적으로 좋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나의 톤이 적절히 맞아떨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
내가 느끼는 외모와 타인이 느끼는 외모는 다르다.
그리고 타인이 느끼는 외모는 단순히 잘생김과 예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자신의 말과 행동, 눈빛과 표정에서, 무엇보다 인생을 살아가며 스스로 쌓아가는 이미지에 따라서 만들어진다.
때론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가 더 예뻐지고, 멋있어지면 자신이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형을 하기도 한다. 성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성형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면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외적 변화에만 집착하다가 정작 훨씬 더 중요한 아름다움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잘생기지 않아도 멋있을 수 있고, 예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 나아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음을 잃어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잃어버리는 게 있는 만큼 삶의 경험이라는 값진 시간을 얻기도 한다.
잃어버리는 것에만 매몰되어 점점 자신의 늙음과 하찮음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멋있어질 수 없다. 대신 자신만의 개성, 나다움, 성장을 천천히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될 젊고 아름다운 외모는 사라지더라도 그 자리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품위와 인격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40대부터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철이 없고, 하고 싶은 건 많은 철부지 아저씨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5년 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져 있다. 10년 전, 15년 전의 내가 부끄러운 면도 많다. 그만큼 어리석었고,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았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삶을 산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 때문이다.
나에게 의미 없는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대신에 나에게 소중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후회도 없고, 좋기만 한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이가 드는 것이 두렵진 않다.
나이가 들어도 잃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져 가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외적 아름다움은 세월을 이길 수 없지만, 내적 아름다움을 세월을 이길 수 있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