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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05. 2020

#_왜 예전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이듦의 철학 : 20대는 절대 모르는 나이듦의 진짜 의미

나는 43살이다. 대한민국 평균수명에 비추어 볼 때 딱 인생의 반을 산 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평균 연령은 2020년 기준 42.7세)

20대에 대학과 군대를 가고, 30대에 결혼을 하고 40대가 되어 나만의 일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결혼을 한 이후에 아이들이 생기고 난 이후부터 이전의 내 삶은 연기처럼 날아갔다. 후~ ㅎㅎ

싱글이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자유는 사라지고, 커가는 아이들, 나를 점점 더 미워하는 아내(무관심이 아닌 미움이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까...), 점점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예전 같지 않은 몸매, 더 이상 나빠지기 힘들 것 같은 저질체력 등이 남아있다.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까. 화려한 젊음은 사라져 가고, 늙음이 조금씩 찾아오는 것을 기뻐할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17살에 만나서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연락하면서 지내는 절친인 그는 멋진 싱글이다. 가끔 그 친구와 통화하다 보면 한없는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에 제법 높은 연봉과 여유로운 여가 생활, 자유로운 연애 등 시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모두 누리는 친구이니 기혼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그런 그도 가끔 나를 비롯해 결혼한 친구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다. 아마 자신에겐 없는 가정과 자녀가 있기 때문일 테다.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 판단할 수 없다. 인생의 정답이라는 게 있다면 모두가 그것을 선택하면 되겠지만, 저마다의 인생은 다 다르고, 같은 선택도 사람에 따라 같은 결과일 수 없는 게 인생이니까. 우리는 그저 매 순간을 선택하며 살뿐이다. 그 선택을 통해 얻는 것이 있고,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반드시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 인생의 선택은 결국 '교환'인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얻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잃어버린 것만을 아쉬워한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주고 멋진 옷을 샀다면 그 옷을 잘 입고 더 멋진 모습이 된 기쁨을 누리면 되는데, 옷을 제대로 입어보지도 않고, 10만 원만 아까워하고 있다는 거다. 10만 원이 아까울 것 같다면, 옷을 사지 않아야 하고, 이왕 샀다면 아까워할 필요가 없는 데도 말이다. 옷은 환불 가능하지만, 인생을 환불할 수 없다. 그런 인생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선택한 것을 더 값지고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뿐이다. 물론 알면서도 그 실천이 어렵다는 게 함정.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은 그 나이에 맞게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명함의 기준은 자기 삶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나도 모르게 무언가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싱글의 자유를 주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안정적인 가정을 얻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부모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주고, 그들의 생명의 대를 이어갈 소중한 존재를 얻는 것이다.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1억 원을 주고 수천억 원으로도 살 수 없는 보석을 얻었는데, 자꾸 1억 원을 아쉬워하는 것과 같은 마음일 거다.


즉,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사실 더 나은 가치를 얻기 위해 기꺼이 내어준 댓가인 셈이다. 다만 그걸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그저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만 느끼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하지 않고 싱글로 지내기로 결정했다면, 나만의 가정을 꾸리는 대신 평생 보다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삶을 얻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다. 그저 각자의 삶에 선택이 있고, 그 선택에 따른 댓가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다면, 인생을 보다 명쾌해지지 않을까?


매일 아침 2시간씩 운동하는 사람은 여유로운 늦잠을 자는 행복을 주고, 보다 건강하고 탄탄한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얻는 것이다. 반대로 늦은 시간 과음과 폭식을 선택했다면, 스트레스 해소 또는 술과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얻는 대신 약간의 건강을 내어주어야 하고, 피로감과 숙취, 과체중도 덤으로 얻게 된다. 이 역시 좋고 나쁨을 판단해서 말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인식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우리는 자신의 삶을 순간들을 선택하고 있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나 역시 뒤늦게 깨닫고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조금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10-20대에 할 수 있는 선택이 있고, 30-40대에 할 수 있는 선택이 있고, 50-60대에 할 수 있는 선택이 있다. 70대, 80대 이후에만 할 수 있는 선택도 분명 있을 거다.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으로 유명한 101세의 김형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100살쯤 되어보니 60세가 될 무렵 다들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던 그때가 그나마 인생의 철이 좀 든 시기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부터가 진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이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직업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어 놓았다가 은퇴하는 사람에게 은퇴 이후의 삶이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0대에 몇 가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가까스로 마흔이 다 되어서야 그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당장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내어줘야 했지만, 분명 그 대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30대에 대부분을 오직 돈만 좇으며 살았다.  29살에 보험회사에 입사해서 30살에 보험회사 부지점장에 억대 연봉을 달성했으니, 남들보다는 제법 빠른 성공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때 돈맛을 봤달까. 늘 내가 원하는 어떤 삶의 모습이 있었지만, 일단 돈부터 번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마음가짐은 나를 끊임없는 조급함으로 몰아넣었고, 운 좋게 좋은 성과들을 내면서도 늘 마음의 안정을 얻기 힘들었다.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이 실패를 거듭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참 어리석게도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경험하고서야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조금 눈뜨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평생 공부를 시작했다. 조금씩 성장하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당장 대박이 터질 그 무엇도 없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차분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무수히 많았지만, 의연하고 겸허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 숱한 고민과 방황 끝에 얻은 나만의 선택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별개로 나는 내 선택을 더 빛나게 만들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상의 기준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나는 성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성장이 비록 더디긴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이전의 실패는 내가 쌓았던 모든 블록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실패였다면, 지금은 설령 어떤 도전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다음 도전은 이전까지 쌓아온 블록 위에서 다시 쌓아가는 느낌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아마 경험해 본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성공을 목표로 살지 않는다. 성공은 내가 추구하는 성장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그릇에 어떤 것이 담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내가 어떤 그릇이 될지를 스스로 정하고 더 아름다운 그릇이 되기 위해 성장해 갈 뿐이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인생에 대해 성공이나 성장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배움을 끝이 없고,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거대한 그림의 작은 조각들이다. 그저 내 삶에 주어진 다양한 일들과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느낀 점을 잊지 않으려 글로 남길뿐이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선택이 옳고 그른지 따지기보다는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이 되도록 만든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좋은 선택을 하고도 그 선택을 믿지 못해 불안해하고 방황하다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면 '역시 내 선택이 잘못된 거였다'고 후회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오늘도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무엇과 교환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오늘의 교환이 어느 날 죽음을 앞둔 내가 돌아볼 때 후회 없는 선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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