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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14. 2020

#_'최고의 나'와 '최악의 나' 사이에서

위대한 정신은 평범함 마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늘 나로 살지만, 늘 같은 내가 아니다.

나는 내 안의 슈퍼에고(각성한 나)와 이드(본능에 가까운 나) 사이의 간격이 매우 큰 사람이라 느낀다.

내 안의 위대한 나는 항상 최선의 나로 살려하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늘 평범하다 못해 비루한 나로 머물고자 한다. 둘 다 '같은 나'이면서 전혀 '다른 나'다.


살면서 어떨 때는 마음의 눈을 뜨고 내가 그전까지 보지 못한 나를 보곤 한다.

그냥 이렇게 살아선 안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내 몸은 끊임없이 더 편하고 익숙한 예전의 나로 머물러 있으려 한다. 솔직히 나라는 인간은 무척 미성숙하고, 게으르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고, 눈 앞의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는 나약한 존재다. 그러다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내 삶의 본질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아주 가끔 아주 멋진 내가 깨어날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잠시 이전의 나를 벗어두고,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계획을 짠다.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에서 기억을 잊어버리기 전에 무언가 단서를 남겨 놓아야 하는 주인공처럼 잠시 각성한 나의 현명한 판단을 잊지 않으려 어떤 삶의 표지판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과 수십년간 몸에 베어버린 나쁜 습관은 더 나은 나로 거듭나려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영화 <메멘토>의 한장면


살다보면 어느쪽으로 기울어서 방향이 뚜렷하게 잡히기도 할 것 같은데, 나란 놈은 양쪽의 힘이 어찌나 쎈지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끝임없이 평범한 나의 격렬한 저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각성한 나(정신)'는 멋진 계획을 준비하지만 나의 비루한 몸과 마음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오감으로 흘러들어오는 현대사회의 강한 자극들은 더욱 한 인간을 무언가의 노예로 전락시키듯 나를 짓누른다.


오랫동안 그 다양한 나 사이에서 방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이 방황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허나 이젠 더이상 미룰 수가 없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 내 삶에 주어진 다양한 상황들이 주는 '고난'들은 그런 흔들림 속에 균형을 다시 잡아주기 위한 시그널이 아닐까.


평범하게 누구나 사는 삶을 비슷하게 살아도 되지만, 내 속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위대한 나로서의 삶을 속삭인다. 나 하나 행동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한 두번의 시도로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나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 그게 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내게 주어진 운명일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현재'의 내가 어떤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삶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은 흔치 않다. 혼자만의 시간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고, 자존을 이야기하는 시기가 있었고, 요즘은 아예 다양한 내 속의 다른 인격들을 표면화하는 시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존재와 욕구, 상황이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인정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그런 면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데 <찌질한 위인전>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아는 위인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었던 숱한 단점들을 발견하고 위로를 얻게 된다. 그 책을 보고 존경했던 위인들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사실 위인들도 애당초 남달랐던 사람들이 아니라, 숱한 찌질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꽃피운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가 괜찮은 사람인 척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찌질함을 안고 살아간다. 나처럼 대체로 찌질하고 비루한 상태로 살다가 가끔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 작은 변화를 응원받기도 하지만 보통은 '오버'로 치부되기 일쑤다. 반대로 대체로 그런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공인들(연예인에서 정치인, 다양한 인플루언서들까지)은 많은 시간을 가치있는 일을 했음에도 작은 꼬투리라도 포착되면 극심한 안티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행동이 옳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진 불완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타인을 욕하기 전에 내가 과연 욕할 자격이 있는가부터 생각해보려 한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풍문으로 들은 몇 개되지 않는 이야기의 조각들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짓지 않으려한다. 그게 지금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기에.


타인을 평가하는 저울에는 가장 먼저 나를 올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한 인간이 올바른 인식을 하고, 그 인식을 통해 오랜 생각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바탕으로 실제 행동을 바꿔나갈 때 삶이 바뀌는게 아니겠는가. 내 삶이 간단하지 않듯 그 누구의 삶도 쉽게 헤아릴 수 없다.


나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냈지만, 어느 순간 이런 평범함이 내 안의 위대함을 질식시키고 있음을 느꼈다. 잠시나마 각성의 산소튜브를 메달고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 본다. 어쩌면 나는 내일도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지 모르지만, 이 작은 차이가 조금씩 다른 삶의 각도를 만들어 낼꺼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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