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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24. 2020

#_우리는 모두 OO의 감옥 속에 살고 있다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집회를 보며 느끼는 것들

미셸 푸코는 말했다.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사실 하나의 감옥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적 공간이라고.


문득 그의 책이 읽고 싶어 졌다. 물론 나의 얄팍한 스키마로 그의 책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라 늘 조금 뜯어먹다 말지만, 요즘 들어 유독 그 이야기가 조금 더 다른 맥락으로 다가온다.


광화문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했다. 그들은 코로나 검사 결과는 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이 정부가 다 벌이고 있는 것처럼 믿는 듯했다. 정부 편을 드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적이었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빨갱이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고 외쳤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믿지만, 프레임은 누가 어떤 선을 긋느냐에 따라 만들어지기에 그들이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그은 선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파되며 더 큰 거짓을 재확산했음에 분명해 보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일 테니까 말이다.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라도 갖추었다면 코로나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간신히 되찾아 가던 일상을 이렇게 단숨에 무너뜨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과 귀를 닫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물론 그들을 주동했던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니 방관하거나 부추긴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현 정부를 비판하고,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는 것과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것까지 가치 없는 것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싸워야 할 대상일 테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들만 듣고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진정한 애국심으로 광화문으로 향한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정말 안타깝다. 좋은 연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더 많이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도 부족한 이때에 그들은 좋은 동기로 나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 진실은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너도 진보 혹은 빨갱이, 그것도 아니면 문빠라고 매도당할 수 있겠다. 호히 그런 프레임은 거절한다. 

중요한 건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 맞다고 할 수 없다는 거다. 많은 국민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든 미통당을 지지하든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에 찬성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어떤 생각과 이익을 대변해주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지율이라는 것이 자꾸 바뀌는 거다.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것 같으니까. 심지어 그 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조차도 그 당에서 그들 자신을 100% 만족시켜줄 리 없다. 결국 정치는 타협인 셈이다.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최선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최악을 막기 위한 정치다. 그래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어떤 대통령으로 바뀌어도 사람들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생각과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은 조금 긴 안목, 조금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려고 부단히 애쓴다. 그런 노력만이 인간의 불완전함과 부조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시대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대통령도 특정 정당도 아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다양한 대안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점점 더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양극단의 성향으로 분열된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분열은 진실을 가린다. 그렇게 진실이 가려지고, 사람들은 본질이 아닌 현상만을 보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글을 쓰는 나 역시 철저하게 나만의 '인식'의 감옥 속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은 정말 방대하고 넓고, 내가 아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데, 나는 마치 내 머릿속으로 세상을 다 이해하는 양 살아가니 말이다.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는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결국 나 역시 이 시대라는 거대한 바닷속의 작은 물고기일 뿐이다. 다른 점이라면, 물 밖에 땅이 있고, 그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밖에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작은 차이뿐이다.


우리는 모두 인식(앎)의 감옥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인식의 틀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수많은 프레임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평생 그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산다. 광화문집회에 나간 태극기부대만 그런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나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은 독자 분대로 저마다 다른 인식의 틀 속에서 살아간다. 그 작은 방 안에서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그 방의 크기를 조금씩 넗힐 수 있을 뿐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 정도 앎의 크기를 확장해본 사람만이 그 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다시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보자. 정치적이든 이슈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면 어느 순간 그 문제 자체가 아닌 그 문제의 주체가 된 사람의 자질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이 나온다. 수년간 언론의 다양한 기사와 유튜브의 영상들을 보며 느낀 것은 그 추측성 기사(혹은 악의적 오보)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그런 이후에 다시 그 보도에 대한 정정기사를 낸다 한들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어떤 이미지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한계를 가지고 뉴스를 봤었고, 어떤 사실을 믿었고, 어떤 사실에 분노했지만, 우습게도 시간이 지나 보니 내가 믿고 분노했던 사실 자체가 다르거나 심지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든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사실'을 접하더라도 그 '사실'의 '진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기까지 어떤 단정도 짓지 않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정말 효과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에너지를 뺏기지 않을 수 있어서 더 좋다.

더불어 더 좋은 방법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간의 근현대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봐도 지금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현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알 수 없다. 본질은 늘 보이는 것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고, 역사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토록 불완전한 인간들은 그것을 끝없이 확장하여 마치 모두가 그게 전부라고 믿을 만큼 큰 지성을 만들었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쩌면 거대한 놀이공원 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 역시 인식의 감옥 속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특정 사실로 전체를 단정하지 않고, 일시적인 이슈몰이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 참고문헌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 / 나남출판)

『담론』(신영복 / 돌베개)

『이것이 물이다』(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나무생각)

『프레임』(최인철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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