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담배를 피운다. 몸에도 안 좋은 연기 덩어리를 왜 굳이 건강한 몸에 집어넣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뭐 지금도 여전히 100% 이해는 못하지만, 머리의 이해와는 별개로 몸으로는 핀다. 한 달에 한 대를 피우더라도 흡연은 흡연이니까.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크게 신경 쓰진 않는 편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이 없기도 하고. (다소 도발적으로 시작했지만, 오해말고 끝까지 읽어주시길..)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학창 시절이나 군대에서 담배를 시작했을 법도 한데, 그 흔한 유혹의 시간들에는 정작 0.1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러다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8살, 의류매장 매니저를 하던 시절 처음 담배를 피웠다. 20대 초반의 어린 직원들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인지, 가끔 매장 이상님과 사장님이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을 느껴서인지 알 수 없다. 그냥 피고 싶었고, 편의점에서 마일드세븐이라는 담배 하나를 사서 피웠다. 독하고 매스껍고 어지럽더라. 뭐 나중에는 그 핑 도는 느낌이 좋아서 피는 거라는 이야기도 이해는 되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불쾌한 느낌은 늘 있다.
불쾌한데 그 걸 왜 피냐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는데, 어느 날 군대에서 친해진 동생을 만났더니 명쾌한 답을 주었다.
“한숨을 쉬고 싶을 때 티 안 나게 쉴 수 있어서 좋다”라고.
듣자마자 공감했다. 아마 처음 담배를 피우던 그 날의 내 심정이 그랬을 테니까. 이후에 보험회사에 취직하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면서 흡연량이 대폭 늘었다. 그때는 한숨을 쉬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대화하기 위해서 핀 것 같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담배를 피우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딱히 어떤 주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뭔가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랄까. 보통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 있게 대화하는 시간의 2분 압축판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확실히 신세계였다. 남자들만의 끈끈한 대화 같은 게 있었다. ‘담배 한대?’라는 말은 일종의 신호였고, 순간순간의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믹스 커피 한잔과 담배 한 대를 양손에 쥐고 짧고 가벼운 대화들을 나눈다. 사실 남자들끼리 커피 한잔 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밥 먹을 때 하는 이야기와는 또 다르니까. 그래서 흡연자들은 밥 먹을 때는 별 말 안 하다가 밥 먹고 나서야 본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혼자 내 사업하겠다고 독립하고 나서는 혼자서 담배 피우는 일은 무척 드물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거나, 만나도 흡연자가 없는 경우에는 따로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몇 달 동안 안 피기도 했다. 그러다 담배 피우는 지인이 담배를 끊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하고 또 같이 한 대 핀다. 그리고 짧은 시간의 밀담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소셜 스모커**가 되었다. 담배를 끊고 싶어 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를 그냥 담배를 끊지 말라고 말한다. 그냥 하루에 피는 양만 줄이고, 정말 피고 싶을 때만 피라고. 물론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상품은 사실 중독에 기반한다. 사람들이 중독되지 않으면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제품 자체가 가진 효능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대상임에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특정 분위기와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며 생겨난 어떤 이미지에 의해 습관화된다. 일단 습관이 되고 나면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끊기 어렵다. 우리의 뇌가 상황공식***을 만들어 놓으면,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음주와 흡연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건 모든 습관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그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스스로 상황공식을 바꿔야 한다. 아니면 해당 공식을 상쇄할만한 또 다른 상황공식을 새로 만들거나.
나는 몸이 좀 예민한 편이어서 그런지, 술이든 담배든 몸에 해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느낌이 있다. 그 역시 내가 형성한 어떤 불쾌감이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처음 만들어진 특정한 상황이 있다.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특정한 감정(감칠맛, 바삭함 등으로 인해 뇌가 맛있다고 느끼는 강한 자극)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는 팝콘에 콜라, 집에서 스포츠경기 볼 때는 치킨에 맥주처럼 상황공식은 무의식 중에 인간의 행동을 유발한다. 그런 습관이 당연하게 반복될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일정기간 이상 유지하면서 음식에 대한 뇌의 상황공식이 달라지면, 평소에 맛있던 것도 너무 느끼하거나 거북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보면 현대의 자본주의는 중독을 장려하는 시스템이다. 중독이야말로 반복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니까.
나 역시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호상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 최소한 그것들이 나에게 작동하는 원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술이든 담배든 상황공식을 바꾸지 않고 그냥 끊으려고 하면 뇌에게 강한 저항감이 생기고, 더 강한 욕구를 만들어 낸다. 그건 쇼핑이든, 스마트폰이든 다 마찬가지다. 만약 담배를 끊고 싶다면, ‘오늘부터 금연이다’라고 다짐하고 실패하기보다는 어제보다 한 대만 적게 피는 것이 답이다. 그렇게 서서히 줄여나가다 보면 뇌가 주는 저항은 최소화가 되고,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피는 상황은 확실히 줄일 수 있게 된다.
작년에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흡연량이 좀 늘었다.(그래봐야 하루에 몇 가치지만) 한숨 쉬고 싶은 순간이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된다. 문득 담배 한 대를 피다가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걸 정말 원해서 피는 건가? 아니면 그냥 무의식적인 습관처럼 피는 건가?’
전자라면 내 기호에 따라 즐기는 것이지만, 후자라면 중독이 되어 휘둘리고 있는 것이기에 그 판단은 중요하다.
기호는 내 기준의 가치판단이지만, 중독은 내 가치 기준을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이다. 당장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게 나에게 더 이로운 선택일 테니까 말이다. 나다운 삶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작은 구속에서 자유로움을 되찾는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소한 행동들을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의 가치 기준에 맞춰나가는 일 말이다.
의식(意識)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에 의하면,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을 말한다. 고로 의식 있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나’라는 존재는 무언가 내가 반복한 시간의 결과값이다. 그 반복을 일부라도 의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무의식적으로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먼저 인식하지 않고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금의 내 모습이 진정 내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내가 반복하고 있는 일상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기호와 중독의 모호한 기준처럼 능동적인 삶과 수동적인 삶의 기준은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거참 담배 한 대 피면서 별 생각을 다한다. 이런 의식의 흐름 역시 내가 반복한 일상의 결과물일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표지 사진 : 알베르 카뮈.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천재 작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담배를 생각하면 카뮈의 이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잘생긴 젊은 천재 작가가 흡연하는 모습은 담배회사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사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담배 피우지 말라 : 물론 성경에 이런 구절은 없다. 심지어 술도 마시지 말라는 말도 없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던가. 다만 '술 취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정확한 문구가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종교적인 가르침을 고려할 때 무언가가 “중독”되지 말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한번이라도 담배를 피우면 죄가 되는 게 아니라, 담배(비단 담배뿐 아니라 인간의 자유함을 구속하는 객체)라는 대상에 종속되어 자유함을 잃어버린 상태가 '죄'라고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담배를 금하는 이유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단지 그 취지와는 별개로 술이든 담배든 뭐든 간에 단순한 금지로만 해석하는 건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소셜 스모커 : 흡연자와 함께 있을 때나 특정 모임에 갔을 때 ‘사교’를 위해 간헐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뜻한다. 참고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연구결과 소셜 스모커든 습관적 흡연자든 심장질환을 유발하는 위험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2017년 5월 13일 국민일보 기사 참조)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궁극적으로 건강을 위해서는 담배는 끊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러분 다 같이 금연합시다!"
***상황공식 : 습관의 힘(찰스 두히그/갤리온) 참조. 책에 나오는 단어는 아니고, 습관과 뇌에 관련된 여러 권의 책에서 이해한 내용을 맥락에 맞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특정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데, 그걸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상황공식'이라고 정의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