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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Feb 19. 2021

#_내 인생 최고의 우동

우동 한 그릇에 담긴 수십 년 장인의 솜씨

무려 33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외여행’이라는 걸 갔다. 첫 번째 해외여행은 무조건 혼자 간다고 생각했었기에 당당히 혼자 일본 여행을 떠났다. 첫 해외여행이라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들도 많았고 에피소드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가장 강렬하게 잊히지 않는 장면은 역시 오사카 도톤보리에 있는 어느 작은 우동집을 찾아갔던 순간이다.


사실 대부분의 면 음식을 좋아한다. 라면, 국수, 파스타, 짜장면 등 동서양, 인스턴트 가리지 않고 일단 면 음식은 좋아하는 나지만, 우동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른 면요리에 비해 맛이 없게 느껴졌고 자연히 멀어졌다. 그뿐이다. 그 우동집을 가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일본 여행을 하며 여러 가지 추천 맛집을 들렸지만, 그렇게 ‘맛있다’고 느낀 집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100엔 초밥집 같은 한국에서는 싸게 먹기 힘든 스시가 정말 저렴한데도 기대 이상이었다는 것 때문에 일주일 사이에 5끼 이상은 스시를 먹은 기억이 있다. 그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렀던 스시집은 정말 맛있었다. 아 원래 스시가 이런 맛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준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가게 된 우동집.

별도의 테이블은 없고 가게 중앙에 주방이 있었고, 그 주방을 네모나게 둘러싼 바(bar) 형태의 구조였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내 주문을 받은 분은 50대 후반 또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요리사였는데, 하얀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무심한 듯 친절하게 주문을 받고서는 면을 삶기 시작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면을 넣었고, 끓였고, 알람이 울렸고, 면을 꺼내서 찬물에 헹궜고, 다시 따뜻한 국물에 넣어 온도를 맞추고, 준비된 우동국물에 간단한 고명과 함께 심플하게 나왔다.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제법 빨리 나왔던 것 같다. 먼저 국물을 한 숟갈 먹었다. 


“아아~” 

술을 안 마셨음에도 해장이 되는 그런 진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었다. 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우동 중에 진정한 우동은 하나도 없었음을. 


美味

요리왕 비룡이라는 만화가 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인데, 그 만화에서 비룡이 만든 최고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외치는 대사가 있다. 아름다울 미(美)와 맛 미(味). 매우 뛰어난 맛이라는 뜻으로 최고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탄사로 표현했던 것 같다. 딱 내 기분이 그랬다. 


모든 식자재의 고유한 맛이 느껴지면서도 그 모든 게 조화되어 최고의 맛을 내는 하나의 요리로 탄생한 느낌. 그전까지 먹었던 우동은 우동국물에 그저 밀가루 면이 들어있었던 느낌이라면, 이 날 먹은 우동은 면과 국물이 그야말로 혼연일체였다. 어떻게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면을 먹을 때도 국물 맛이 전해졌고, 국물을 마실 때도 면과 함께 먹는 느낌이랄까.

우동을 만들어 주신 요리사님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요리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은 친절하기 만한 느낌이 전해진다. 이 일을 아마 수십 년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우동의 ‘장인’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이구나 싶었다. 실제로 그 우동집이 얼마나 유명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참 많은 사람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스시집도 그렇고 이 우동집도 그렇고, 요리하는 분의 어떤 장인정신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그토록 맛있을 수 있음에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같은 요리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들이 이룬 경지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큰 행복이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언제 한번 짧게 일본 여행을 하며 다시 그곳을 찾아야지 생각했지만, 이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여행 갈 마음이 사라져서 아직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10년도 넘은 지금, 여전히 그곳에서는 그 우동을 팔고 있는지, 누군가는 오늘 저녁에도 그 우동을 먹으며 행복해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 맛에 대한 기억만 강렬히 남아서인지 정확한 그 우동집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글을 쓰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오사카 난바역 근처 도톤보리에 있는 '난바우동'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날 제가 먹었던 메뉴는 '튀김우동'이었을 것입니다. 10년도 넘었다 보니 지금은 어떨지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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