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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28. 2023

#_등심 스테이크를 먹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만약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면 이 글이 조금 도움이 될 겁니다.

명절 연휴 첫날,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었지만 아내와 나 모두 주중에 진행하던 업무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오전부터 집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입니다.

오늘 메뉴는 미리 예정되어 있던 간장닭볶음탕입니다. 닭도 손질되어 있고, 일부 양념도 들어있어서 간편하게 할 수 있었지만, 감자와 양파, 당근, 버섯 등 각종 야채들은 일일이 따로 손질해서 넣어줘야 했습니다.

큼직큼직하게 썰어주고, 미리 준비한 그릇에 넣을 순서에 따라 담아줍니다. 손질된 닭은 한번 따로 데쳐줍니다. 이때 소주나 와인 등을 200ml 정도 넣고 같이 끓여주면 세척도 되고, 잡내도 잡아줄 수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 월계수잎이나 생강가루등을 넣어도 좋습니다. 저는 빨리 해야 해서 그냥 집에 요리용 술(원래는 선물 받은 술인데 잘 마시지 않아서 요리용으로 유용하게 씁니다.)로 대체했습니다. 살짝 하얗게 겉이 익는 느낌으로 30초~1분 정도 데친 후에 꺼내서 한번 헹궈줍니다.

이제 본격적인 닭볶음탕을 조리할 차례입니다. 물을 600ml 정도 넉넉히 부어주고, 데친 닭조각들을 넣어주고 끓여봅니다. 양념이 잘 베이도록 설탕을 약간 넣어주고, 미리 준비된 양념도 넣어줍니다. 간장베이스 양념이라 깔깔한 맛이 부족할 것 같아 적당히 고춧가루도 뿌려줍니다. 다진 마늘을 넣고, 미리 썰어놓고 보관 중인 대파도 한 움큼 넣어줍니다. 미리 썰어놓은 야채 중에서 오래 익혀야 하는 감자와 양파, 당근은 먼저 넣고 끓여줍니다. 10분 정도 지나 간을 보니 양에 비해 소스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간장과 후추, 물엿을 적당히 더 넣어서 단짠의 비율을 맞춰줍니다. 다시 간을 보니 아주 딱 좋습니다. 이대로 잘 베여서 익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까 안 넣었던 버섯을 추가로 넣고 골고루 양념이 베이도록 저어줍니다. 물양이 좀 많은 것 같지만 괜찮습니다. 이럴 때 라면 사리 하나 넣어주면 딱 좋을 것 같네요. 마침 밥도 조금 부족한지라 망설임 없이 라면사리를 넣고 익을 때까지 더 끓여줍니다.

와~ 먹음직한 비주얼이 완성되었네요. 라면사리 덕분에 국물도 적당히 자작해졌습니다. 이렇게 오늘 점심은 맛있는 닭볶음탕으로 온 가족이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은 배드민턴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가 카레를 먹자고 해서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명절이라 저는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먹자고 했습니다. 아내가 카레를 만들어 주고 아이들이 먹는 동안 저는 등심 스테이크를 구워 봅니다. 오늘은 충분한 버터를 먼저 녹여 끓기 시작할 때 등심을 올려줍니다. 고기를 구울 때 핵심은 불세기인데요. 타지만 않을 정도로 적당히 센 불로 굽는 게 중요합니다. 너무 불이 세면 겉만 익고 속은 너무 안 익게 되는 반면, 불이 약하면 익는 과정에서 육즙이 빠져 버려서 고기가 퍽퍽해지거나 질겨지기 때문입니다.

육즙을 유지하면서 겉은 바짝 익히고, 속은 부드럽게 미디엄정도로 익을 수 있도록 불 세기를 미세하게 조정해 줍니다. 중불보다 약간 더 센 정도의 화력이면 됩니다.(이건 글로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의 영역이군요)

한쪽 면을 충분히 다 익힌 후에 반대쪽으로 뒤집어 줍니다. 이렇게 뒤집고 나서 그때 소금과 후추를 충분히 뿌려줍니다. 아래쪽이 익는 동안 위쪽에선 간이 살짝 베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뒤집을 때 버터에 녹는 양도 많기 때문에 반대쪽도 살짝 한번 더 뿌려줘도 괜찮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취향에 따라 소금에 찍어먹을 수 있도록 따로 준비했기 때문에 한쪽만 간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양쪽이 충분히 다 익었어도, 고기가 두껍기 때문에 불 세기에 따라 속은 안 익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좀 덜 익힌 미디엄레어도 좋아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미디엄웰던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 번씩 더 뒤집으며 조금 더 익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자, 이렇게 겉바속촉의 등심 스테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한 입 썰어서 먹어보니 고기와 버터, 소금, 후추 간으로 완성된 고소한 맛이 입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립니다. 다른 요리는 잘 못하지만, 역시 고기는 좀 잘 굽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늘 저녁도 맛있는 카레와 스테이크로 즐겁게 식사했습니다.


늘 이렇게 먹는 건 아니지만(평소엔 바빠서 요기요에서 시켜 먹는 날이 더 많지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도 이렇게 디테일하고, 정밀한 과정을 거칩니다. 닭볶음탕에 간장이 조금 더 많아져도 짜서 맛있게 먹기 힘들겠지요. 스테이크를 굽는 불이 조금 더 세면 겉은 타는데 정작 속은 제대로 익지 않는 일이 벌어져서 수습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다들 쉽게 공감하실 겁니다.


제가 여기까지 길고 상세한 요리이야기를 한 이유는 책을 읽을 때 역시, 마치 잘 요리된 지식을 섭취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재료만 준비하고 전혀 익히지 않는다거나, 전혀 간을 안 한다면,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맛이 없겠지요. 아마 먹기가 힘들 겁니다. 어떤 건 먼저 익혀야 하고, 어떤 건 나중에 익혀야 하는 것처럼 책도 먼저 읽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나중에 읽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만약 책을 매번 유튜브로 요약된 걸로만 본다면, 매일 삼시 세 끼를 라면으로만 먹는 것과 똑같습니다. 요리마다 먹는 방법이 다르듯이 책의 장르마다 읽는 방법은 달라야겠지요. 각자의 입맛이 달라서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독서 취향 역시 각자 원하는 삶의 모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입맛은 철저히 개인의 기준에 맞춰지는 것처럼 독서 역시 나의 기준에 맞추기 시작하면 즐거워집니다.


저는 요즘 이미 몇 년 전부터 몇 번이나 읽어왔던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또 읽으면서 좋은 내용은 필사하기도 하고, 매일 한 챕터씩 낭독하기도 하고, 그중에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은 따로 메모해 두고, 연관되는 강의나 작가 정보를 검색해서 더 깊이 있게 공부할 부분을 파고들기도 하면서 읽고 있는데요. 오늘 먹었던 스테이크만큼이나 매일 맛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이렇게 꼭꼭 씹어먹는 이유는 저에게 부족하지만 꼭 필요한 영양분이 아주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이고요.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의미의 획일화'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독서를 그냥 눈으로 책의 글자를 읽는 뻔한 행위로 생각한다면, 도무지 재미있지도 의미 있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독서나 책의 의미를 획일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들처럼 바라보면 어떨까요?


만약, 책을 읽을 때 내 입맛에 맞게 맛있게 요리를 해서 먹는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서 읽을 수만 있다면, 책을 읽는 기쁨도 책을 읽어내는 깊이도 모두 몇 배는 더 커지지 않을까요?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책을 읽고 있나요? 혹시 정말 좋은 양질의 고기(좋은 책)를 사놓고도 제대로 요리나 양념도 안 하고 그냥 썰어서 먹고 있진 않나요? 그래서 '이게 왜 좋다고 하는지 모르겠네'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나요? ^^


단언컨대, 독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지식만찬입니다.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최장순의 <의미의 발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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