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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27. 2023

#_피곤하고 아름다운 하늘

인생은 모순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독감인지 감기인지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자고 있었다가 제가 가니 깬 듯합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었는데, 아내가 아파서 치우지 못한 식탁 위 음식들과 돌리기만 하고 꺼내지 못한 빨래가 한가득입니다.


새벽에는 독서모임, 오전에는 카페에서 편집작업, 오후 늦게 밥 먹고 와서 강의준비,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강의 마치고 나니 진이 빠지는데, 집으로 돌아와도 쉴 수가 없으니 왠지 피로감이 더 올라오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아픈 아내를 탓할 수도 없고요. 려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앞섭니다. 내일은 회사를 하루 쉬면 어떠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일찍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밤에 먹을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담아주며, 얼른 들어가서 푹 자라고 합니다.


피곤하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집안일이든, 청소든, 글쓰기든, 언제고 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 피곤해도 천천히 하면 됩니다. 잠은 조금 더 늦게 자면 될 일이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 높아졌던 스트레스 지수가 쑤욱 떨어집니다.


꼭 해야 할 건 자기 전에 해야겠지만, 나머지는 도저히 오늘 다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듭니다. 아, 근데 정말 피곤한데, 잠이 안 옵니다. 왜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오늘 강의를 하며 텐션이 올라가서인지, 아니면 피곤한데 한 사이클을 못 쉬고 넘어가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유가 중요하진 않겠지요.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거의 새벽 3시가 다 되어 갑니다. 이때 시계를 보곤 잠들었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무겁습니다. 몇 시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거겠지요. 아프다던 아내는 이미 아침 일찍 출근했고, 요즘 친구들을 만나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들을 배웅합니다. 그리고 소파에 잠시 앉아 그대로 깜박 졸았습니다. 아들이 다시 집으로 오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배드민턴채를 놓고 갔다가 찾으러 왔는데, 집에 없는 걸 보고는 학교에 두고 왔다는 걸 뒤늦게 떠올리며 다시 나갑니다. ㅎㅎ 한번 더 인사하고 시계를 봤는데, 이런, 8시 반입니다. 딸을 깨울 시간입니다. 아침잠이 많은 잠꾸러기 딸은 이미 늦었는데도 서둘러 일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여러 번을 불러 깨운 뒤에 서둘러 같이 나갈 채비를 합니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결국 5분 지각입니다. 괜히 깜박 졸았던 게 미안해집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조금은 피곤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이런 날도 있습니다. 출근길에 하늘을 보는데, 나의 피로감과 대비되는 맑은 가을 하늘이 참 맑기만 합니다.

늘 상쾌한 마음으로 올려다보던 하늘인데, 오늘은 피곤에 찌들어 바라보는 이질감이 새롭습니다.


인생은 참 모순적이군요.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오전엔 미팅이 있어서 마치고 오는 길에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짬뽕을 먹으러 갑니다. 처음 먹어보는 알짬뽕인데, 새빨간 비주얼과는 달리 하나도 맵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딱 좋습니다. 오늘은 짬뽕국물마저 모순적이네요.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니까 말이죠. 역시 인생은 재미있습니다.


오전에 시원하게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느낌으로 시원하게 먹은 알짬뽕 때문인지 몰라도 정신이 상쾌해집니다. 보통은 짬뽕 먹고 나면 나른하고 식곤증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아이러니입니다.


알아차림 속에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음을 알며, 그렇게 앉아 있을 때 매우 행복합니다. 무수한 사람이 분주한 삶 속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이런 기쁨을 맛보지도 못한 채 살아갑니다. 잠시만이라도 자리에 앉아 의식을 숨으로 가져가 호흡하면 커다란 행복이 옵니다.


예전에는 피곤하니까 힘들고, 아파서 힘들고,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힘들고 그랬는데,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곤해도 살아있음이 재미있습니다. 아파도 내가 그동안 잘못 관리해 온 부족함을 깨우쳐주는 듯해서 좋은 면이 있고요.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제법 차분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인생의 다양한 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흐뭇합니다.

무엇보다 순간순간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 자리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현존하는 느낌을 통해 존재하는 그 자체의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토록 자유로운데 왜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매여있는 것인지 역시 아이러니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틱낫한의 <How ti sit, 앉기 명상>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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