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여기는 편집의 블랙홀입니다.
노트북을 펼치고, 어제 메일로 보내둔 원고 파일은 다운로드합니다.
책쓰기 수업에서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공저책을 편집하는 시간입니다. 오전에 2~3시간 정도 여유 있게 작업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수업 단톡방에 인증샷을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후후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몸이 찌뿌둥합니다. 크게 한번 기지개를 켜고 스마트폰을 열어 봅니다.
11시 40분입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안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158페이지 원고 중에 이제 16페이지까지 작업했는데 말이죠. 하아. 갈 길이 멉니다.
잠시 카톡으로 온 글 중 답변드릴 것들 작성하고, 알림 온 것 중 중요한 것들 몇 가지를 살펴봅니다. 별 거 없습니다. 가끔 우리는 스마트폰이 10분만 없어도 큰 일 날 것처럼 행동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몇 시간 안 봐도 별일 없습니다. 때론 하루 종일 그럴 때도 있고요.
점심시간이 다가오지만, 어제저녁을 조금 늦게 먹어서인지 전혀 배가 안 고픕니다. 게다가 하던 거는 마저 끝장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다시 모니터 속 원고에 집중해 봅니다.
'딸깍'
'다다다다 다다다 다다'
글을 지웠다. 적었다. 엔터를 치는 소리만 적막하게 들려왔을 겁니다.
카페에서 분명 노래가 흘러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간혹 옆에 앉은 사람이 큰 소리로 이야기할 때 뭔 일인가 하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어느 정도 마치고 다시 시간을 보니 2시가 넘어있었던 것이죠. 파트 1은 3시간짜리, 파트 2는 2시간 30분짜리였네요..ㅎㅎ 정말 영화를 보고 나온 느낌과 비슷한 것 같네요. 같은 자세로 계속 앉아 있어서인지 목과 허리가 제법 뻐근합니다만, 그것만 빼곤 참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가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30분~1시간 단위로 시간이 순삭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오랜만에 저의 생산성 아지트로 와서 제대로 집중모드로 달렸네요. 개운합니다. 그런 거 보면 저도 이런 분야가 제법 잘 맞는 체질임에 분명합니다. ㅎㅎㅎ
책 읽고, 글 쓰고, 강의할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말 모르겠으니 말이죠.
자, 이제 일어날 시간입니다. 파일을 저장하고, 어디서든 다시 이어서 작업할 수 있도록 파일을 개인 메일함에 공유해 놓습니다. 노트북을 닫고, 가방에 정리해 봅니다. 집중모드가 끝나서인지 이제 슬슬 배가 고파옵니다. 정리한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에 놓인 커피잔을 들여다보니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이 남았습니다.
홀짝 마시고 카운터로 가져다줍니다.
이렇게 5시간 30분이 순삭 되었습니다. 일어나는 와중에 오늘은 이걸 글로 적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공저책 작업이었지, 오늘 써야 하는 제 글은 아니었으니까 말이죠.
나는 집필 중이던 책을 끝마치고 싶었지만 먹고 잠자는 방에서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서재로 쓸 오두막을 간절히 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 책을 끝마쳤고 다른 글도 몇 개 썼다.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애니 딜러드는 책을 쓰기 위해 오두막을 간절히 원했고, 실제로 오두막을 구해서 책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카페가 많은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어디서든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네요. 종종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제 저녁에 있을 독서강의 준비를 시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