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일찍부터 배드민턴 시합이 있어서 평소와 달리 온 가족이 일찍 일어나 8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섰습니다. 딸은 6학년이라 가장 이른 시간부터 일정이 잡혀있어서 8시 반까지 잠실학생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딸의 시합이 먼저이긴 하지만, 딸은 큰 의욕 없이 참가에만 의의를 두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11시부터 경기를 시작하는 아들은 작년에 이어 2번째로 참여하는 대회이기도 했고, 그동안 배드민턴 실력이 부쩍 늘어서 이번에 우승을 목표로 하고, 한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실력면에서도 함께 배우는 친구들 중 가장 잘한다고 인정받고 있고, 6학년 형들과 시합해도 될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나온 딸은 경기 내내 큰 의욕이 없어 보였습니다. 응원하러 간 엄마 아빠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흠,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거에만 진심인 녀석입니다. 2번의 경기 후 딸은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기대도 없었으니 아쉬움도 없어 보였습니다. 빨리 마치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아들의 경기가 시작되면서부터니까 말이죠.
아들의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의 눈빛이 반짝입니다. 긴장되는 순간 서브를 넣습니다. 상대 선수가 받아칩니다. 잘하는 친구 같습니다. 자세가 제법 좋습니다. 조금 높게 올라온 공을 강하게 스매싱! 아들은 가볍게 선취점을 따냅니다.
그렇게 내리 5점, 예상과 달리 제법 일방적인 스코어로 초반 플레이가 진행됩니다. 상대 선수가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잠시 물을 마시러 갑니다. 아들도 제법 숨이 차 보이지만, 기세가 좋습니다.
경기가 다시 진행됩니다. 계속되는 초반 실점에 실력이 없는 줄 알았던 상대선수가 본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연이어 3점을 따라옵니다. 연이은 실점에도 아들은 큰 표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부동심을 보이는 모습이 제법 의젓해 보이는군요. 그리고 다시 멋진 서브포인트를 얻어냅니다. 그러더니 또 연이어 점수를 따기 시작합니다. 15-8. 점수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상대선수는 또 경기흐름을 끊고 물을 마십니다. 노련하네요.
역시나 물 마신 뒤에 다시 멋진 기량을 보여줍니다.
'탕 - 탕 - 탕 - 탕'
계속되는 공방이 이어집니다. 서로 양보 없는 랠리가 이어집니다. 강하게 내리쳤다가 가볍게 넘기기도 하고 완급조절을 서로 하지만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들의 회심의 일격에 결국 승점을 가져옵니다. 이 랠리로 경기의 승패가 완전히 결정된 느낌입니다. 최종스코어 21대 13으로 아들의 승리입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느낌으로 담담히 채점표를 받아 걸어옵니다.
자리로 돌아와서 물 마실 때마다 상대방이 흐름을 끊었다고, 그 녀석 노련하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반전은 그때 자기도 숨차서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좋았다고. 역시 밖에서 구경하는 것과 당사자의 입장은 다른 모양입니다. 잠시 얘기하더니 함께 출전한 다른 친구와 함께 어디론가 갑니다. 아마 연습을 할 모양입니다.
드디어 대망의 두 번째 게임, 예선은 3명이 한 조여서 2승을 하면 바로 8강 진출입니다.
아들이 시합하는 코트로 응원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봅니다. 경기장은 빈 곳 없이 모든 코트에서 시합이 진행 중입니다. 한쪽에서는 응원하는 소리, 파이팅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체육관 안은 열기의 도가니입니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시작이 좋습니다. 2점 연속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어진 서브.
앗, 이게 뭔가요. 서브실수로 실점을 합니다.
이제 상대방의 서브인데, 이 선수는 키는 작은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서브를 크게 준 뒤 아들이 강하게 스매싱을 하도록 유도한 뒤 가볍게 받아 코트를 살짝 넘기는 식으로 허를 찌릅니다. 그렇게 연이어 실점을 허용하기 시작합니다. 점수는 역전되고, 점수차도 벌어집니다.
아들도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지 배드민턴 채를 허공에 휙휙 휘두르며 고개를 갸웃거려 봅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아들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 선수는 더욱 노련합니다.
다시 공방이 이어집니다. 역시 비슷한 플레이에 속수무책입니다. 서브를 상당히 까다롭게 주는군요. 서브를 받아치며 계속 동작이 닿기 힘든 빈 곳을 정확히 공략합니다. 아들도 한 번씩 반격하며 멋지게 스매싱을 성공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실수로 점수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점수를 뒤집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상대 친구는 아들이 첫 번째 상대했던 선수를 21대 10으로 이겼다고 하네요. 아들이 많이 아쉬워합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평소에 실력이 못했던 다른 친구를 C등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아쉬워하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많이 아쉬웠을 아들의 이야기를 아내와 함께 들으며 위로와 격려를 해줍니다.
시합은 끝났음에도 아들은 못내 아쉬웠는지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다행히 경기의 승패는 담담히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사실 아들이 잘하길 바랐지만, 계속 대진운이 나빠서 강한 상대를 만나서 졌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속으로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지금의 패배가 약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내가 아프든, 실수를 했든 결국 스코어로 승패는 결정됩니다.
만약 조금만 실력 있고, 조금 운이 따라주면 쉽게 우승할 수 있는 경기였다면, 당장 기분은 좋겠지만,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과신하거나 우쭐대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생각보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건 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 그런가요.
몇몇 학교에서 대항전으로 진행되는 사설 배드민턴 대회조차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어떤 경쟁과 승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도 승리보다는 패배를 경험하는 일들이 많이 있게 될 겁니다. 그럴 때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더 내 실력을 키워야겠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길 바랄 뿐입니다.
삶은 배드민턴 경기처럼 승패로 결정 나는 시합이 아니니까 말이죠.
이기는 게임이든 지는 게임이든 한 점씩 쌓아간 노력을 자기만의 삶의 영역에서 잘 가다듬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남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말처럼 정말 중요한 건 지더라도 꺾이지 않는 마음일 테니까요.
내가 만약 ___에 성공하고 싶다면 나는 먼저 ___를 실패해야 한다.
존 크럼볼츠와 라이언 바비노가 쓴 <빠르게 실패하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성취하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그 이전 단계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먼저 경험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아갈수록 이 말이 깊이 와닿습니다. 시행착오 없이 쉽게 이루어진 일은 때로 더 큰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극복하고 만들어낸 성공은 진정한 성장과 성취를 기쁨을 느낄게 해줄 뿐만 아니라, 성공 자체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멋진 마인드를 가지게 도와줍니다.
아들의 도전과 실패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더 도전해야 하는지, 나는 지금 어떤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