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들이 깨우쳐 준 인생의 단면들
어제 아이들 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었습니다.
이미 고학년이 된 저희 아이들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준비했는지 반응이 영 시큰둥했고 심지어 굳이 안 와도 된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안 보러 갈 수도 없는지라, 새벽 독서모임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와서 아내와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 강당에 도착하니 이미 자리가 만석입니다. 간신히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사회를 맡은 6학년 친구의 어색한 인사와 함께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전에만 15개 정도의 순서들이 있었는데요.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게 저를 사로잡은 아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1학년 아이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어설펐지만, 정말 사랑스럽더군요.
순서를 틀리고, 우왕좌왕하면서도 끝까지 무대를 해내는 친구들의 모습이 어딘가 제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문득 사랑받기 위해서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배웠습니다. 어설픔의 미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네요. 한없이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어여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애당초 이런 공연을 기획하는 것 자체가 "잘하는 것"에 있지 않을 겁니다. 물론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격려하겠지만,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것을 넘어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서로 생각도 다르고, 잘하고 못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이 무언가를 함께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무대가 더 뭉클하게 제 마음을 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고학년들의 무대는 몇몇 아이들은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몇몇 아이들은 마지못해 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세상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사회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듯이 말이죠.
말로 다 표현하긴 어렵지만, 아주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하루가 3일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새벽일정, 오전일정, 오후일정, 야간일정이 다 달라서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우리가 무언가 효율적이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무의미한 경우도 많습니다. 반대로 실제로 중요한 일들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낭독했던 글 중에서 같은 맥락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을 공유해 봅니다.
1.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잘한다고 해서 그 일이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2.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나는 무엇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