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Dec 14. 2023

#_알아도 실천이 안 되는 이유

지식과 행동 사이에 흐르는 넓은 강

저는 책을 제법 많이 읽는 편입니다. 구입하는 책도 많고, 책 한 권에 꽂히면 그 작가의 다른 책은 물론, 그 작가의 주제와 관련된 다른 책이나, 이전에 관심 가졌던 다른 책까지 다시 찾아보면서 같이 구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건 그다지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좀 둔하다고 해야 할까요? (다른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저 하나에 국한된 생각이니 오해는 없으시길.)

무슨 말이냐 하면, 좋은 책을 읽고

'와~ 대박, 이렇게 좋은 걸 지금까지 몰랐다니!!!'라며 놀라면서도 정작 그 책을 읽고 제 삶 자체가 달라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머리만 커졌다는 말을 하죠. 네, 맞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그런 상태입니다.

그래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양한 책을 읽고 사고 하다가도 매일 다시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읽었던 책을 다시 읽거나 필사하거나 낭독하면서 제 자신에게 더 중요한 지식들을 반복적으로 제공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천도 해야겠지만, 아직 머리만 커서인지 실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참 길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지요.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해 봤습니다.

왜 나는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가? 왜 아는 것에서 머물러 멈춰있는 것인가?

처음에는 조금 자책하는 마음도 있었고, 부끄러운 마음도 컸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볼수록 단순히 의지와 노력 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독서로 예를 들고 싶지만, 독서는 아직 충분한 경험을 하지 못한 분이 많으니 더 일반적인 예가 좋을 것 같은데요. 음... 뭐가 좋을까요? 농구를 한번 예로 들어볼까요?

농구는 어떤 스포츠죠? 커다란 공을 내 키보다 높은 백보드에 달린 동그란 링 속으로 던져 넣어서 점수를 내는 게임이죠. 들어보니 무척 간단해 보입니다. 그렇죠? 농구 선수들이 하는 걸 보니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던지는 족족 골대안으로 철썩 들어가는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뭐, 간단하구나' 생각하고 나도 농구공을 들고 던져봅니다. 아니 근데 왠걸요. 농구공이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선수들은 무슨 탱탱볼처럼 가볍게 통통 튕기며 던지던데, 실제 감각은 전혀 다르죠. 내가 던진 공은 골대는커녕 백보드조차 건드려보지 못하고 허공을 가릅니다. 자세가 엉성한 건 말할 것도 없죠. 

어떻게 하면 농구를 잘할 수 있을까요? 이미 여러분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연습해야죠. 부단히 공을 골대로 던져보면서 슛을 던져보고, 드리블을 하면서 어떤 자세로 움직여도 공을 튕기면서 걷고 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마치 내 몸과 공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짧게 농구를 이해하고 실제로 농구를 잘하기 위한 과정을 설명드렸는데요. 아마 크게 틀린 부분은 없을 겁니다. 여기에 우리가 무언가를 알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다 숨어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어떤 지식을 이해할 때의 수준은 레벨 0단계 입문자 단계입니다. 정말 간단한 룰이나 전체적인 개론적인 측면에서 지식을 이해하죠. 제가 처음에 설명한 "링 속으로 공을 던져 넣어서 점수는 내는 게임"이라는 문장처럼요. 이때의 지식을 설명하는 내용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배경지식을 심어주는 수준의 설명일 뿐, 이걸 안다고 해서 실제 농구를 잘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 하는 사람은 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해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지요. 그럼 그걸 언제 깨닫느냐, 맞아요.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깨닫습니다.

나는 아직 실제 농구공을 던져 농구골대 안으로 깔끔하게 던져 넣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마치 아주 작고 가벼운 탁구공을 바로 앞의 컵 속으로 던져 넣는 느낌처럼 이전에 내가 알던 수준의 생각의 범주를 기반으로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막상 실제로 해보면 결코 간단하지 않죠. 

다이어트하는 거 이론은 얼마나 간단합니까?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 이상의 원리가 필요한가요? 그 말만 들으면 너무 쉬워서 우스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덜 먹는 것과 더 많이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의 의지를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익숙했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2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우리가 어떤 지식을 처음 이해할 때는 설령 나는 "알았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이해하는 수준이 낮기 때문에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둘째, 막상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면 내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과 실제로 체험하는 것 사이에 매우 큰 간격이 존재합니다.


이해하셨나요?

좀 전에 언급한 다이어트를 예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쉽게 생각하면 단순한 이론대로 "덜 먹고 많이 운동"하면 되겠지만, 우선 덜 먹는 게 힘듭니다.

왜냐하면 식욕은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체활동이기 때문에 우리 뇌가 깊이 관여하고 있죠.

그래서 많이 먹었을 때, 적게 먹었을 때, 좋은 걸 먹었을 때, 나쁜 걸 먹었을 때 등등 정말 다양한 변수에 따라 몸에서 다른 반응이 나타나게 되죠. 호르몬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니까 좀 전에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상태에서는 '까짓것 하루에 한 끼 정도 줄이는 거'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막상 배고픈 상태가 되어서 관련된 호르몬이 내 몸을 지배하게 되면 그걸 참는 게 무척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다짐을 하는 시점과 실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시점의 몸 상태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 평생도 아니고, 딱 일주일 혹은 딱 한 달만 저녁을 먹지 말자고 결심하고 계획해 봐도 막상 그걸 실천하는 배고픈 저녁에 가족들이 마침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자고 하면 그걸 참을 수 없는 것이죠.


자,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 조금 감이 잡히셨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는 단계에서 실천의 단계를 넘어 익숙함의 단계까지 발전하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1. 내가 달성하기 원하는 상태(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합니다.

2.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봅니다.

3. 지금 내가 아는 수준은 막연하고 충분히 최종목표까지 바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알고, 대략적인 실천 순서정도만 나열해 봅니다.(당장 실천 가능한 작은 목표나 행동 → 조금 더 큰 중간 목표

→ 조금 더 큰 목표 → 최종 목표 식으로)

4. 지금 당장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행동과 일주일 내로 달성가능한 아주 작은 목표를 세웁니다.

5. 그것을 실천하고 달성해 봅니다.

6. 충분히 가능한 작은 목표였으니 전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목표와 행동량을 조금씩 높여봅니다.

7. 역시 반복적으로 실천하고 달성합니다.


이런 7단계를 거쳐서 우리는 큰 목표를 위한 작은 행동과 실천이라는 작은 사이클을 반복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습을 통해서 내가 실제로 일정기간 동안 어느 정도 수준까지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측정"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 목표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그 시점에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어리석게 느끼는 말 중에 하나가 자기 계발서를 읽고 나서 '책 읽어보니까 다 하는 이야기가 똑같고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큰 맥락에서는 다 갖은 범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다 "거기서 거기가" 맞죠. 애당초 그럴 수밖에 없고요.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니 출발점과 목적지가 대체로 비슷하고, 그것에 대한 수많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방법들을 각자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서술되어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그 책을 읽었다라거나 내용을 안다는 건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라클 모닝이나 수면에 대한 책을 100권을 읽어도 매일 늦잠만 자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부끄러운 상황밖에 안 될 테니까요. 

제가 볼 때 오히려 많이 안 읽었기 때문에 다 비슷하다는 식의 "넓은 범주"로 밖에 해석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깊이 있게 읽었다면, 더 다양한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저자마다 어떤 개인적인 성향이나 목표가 달랐고, 그에 따라 어떤 방법을 다루었으며, 그게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세밀한 포인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스로 "앎"에 대해서 정의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각 없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충분히 아는 것이 아니다


손흥민 선수가 드리블을 하면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순간적으로 슛을 날릴 때 깊이 생각하고 행동할까요? 아닐 겁니다.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하다시피 움직인 것일 테죠. 그러므로 손흥민 선수는 축구에 대해 충분히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수준에 올라가기 위해서 어떤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왔을 겁니다. 

마흔이 되었을 때 불혹(不惑 : 살아가며 쉽게 미혹되지 않는다)이 되었다고 말하고, 쉰이 되어서는 지천명이라고 말한 공자조차 일흔이 되어서야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 : 마음 가는 대로 행함에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상태를 이루었습니다. 비로소 삶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많이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조금 더 저라는 사람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생각과 행동을 한 결과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느라 잊고 지낸 내가 원래 바라던 내 목표를 상기할 수 있고, 내 삶을 내가 생각의 방향대로 돌려놓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둔하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지식을 이해하는 과정이나 방식도 다 개인차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빠르게 이해하는 게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생각의 속도가 행동의 속도보다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에 행동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생각으로 헤아려보면 답이 없거든요.(물론 현재의 사고 수준에서 답이 없는 것이지만 말이죠)

그래서 행동을 안 하고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기가 쉽습니다. 빠른 생각의 부작용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대로 이해가 좀 느린 사람은 배우는데 무척 더디지만, 생각과 실천의 갭이 좁기 때문에 실천력이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가 느리니 늦게 깨달은 만큼 행동으로 만회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는 대로 결과적으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이해가 느린 사람이 오히려 행동으로 먼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 있거든요. 그걸 느리지만 천천히 경험해 나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로바로 깨우쳐가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셈이죠.


배움은 "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제가 독서를 강의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점이 책중심의 독서를 나중심의 독서로 바꾸라는 것인데요.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식으로 배우고 성장해 나가야 하는지 나를 발견하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 나에게 필요한 지식들을 확장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방법은 참고만 할 뿐 부러워할 필요도 조급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어제의 나와의 경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_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