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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20. 2024

#_4일간 <월든>이 나에게 남긴 것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


#0410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펭귄클래식)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명언들을 남긴 책 <월든>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미루었던 책인데, 왜 이제야 읽게 되었나 싶기도 하고요. 4월 선정도서로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널리 읽히는 고전에는 뭔가 특별한 무언가가 있네요.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진솔한 삶을 살았고,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그건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군요.     

내용만 보면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무소유나 검소한 삶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걸 결과적으로 그런 형태로 드러난 것 일뿐, 소로는 끊임없이 삶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본질에 집중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보니,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생활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불필요한 것들이 많더라는 것이죠. 그런 그의 생각과 접근방식에 깊이 공감하고 감탄합니다.
 
우리가 보내는 이 삶이라는 시간과 내가 머무는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시공간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되네요.

며칠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봐야겠습니다. ^-^     




어떤 작가든지 남의 삶에 대해서만 쓰지 말고 소박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진솔한 삶을 살았다면 그 이야기는 제삼자에게 새로운 경험이 된다.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의 육신은 곧 토양으로 섞여 들어가 퇴비로 변한다. 옛 책에 쓰여 있듯이 사람들은 흔히 ‘필요’라고 불리는, 운명처럼 보이는 것에 발목을 잡혀 곧 좀먹고 녹슬고 도둑이 침입해 훔쳐 갈 재물을 축적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마침내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바보 같은 삶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또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견해야 말로 그의 운명을 결정, 아니 암시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과 삶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교리문답식으로 따져보면, 사람들이 통상적인 삶의 방식을 선호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에게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성이 영민하고 건강한 자들은 해가 분명히 솟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고정관념을 버려라. 예부터 전해 내려온 관습이라도 유익하다는 증거가 없으면 과감히 버려라.     


기적은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공자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상상력을 가지가 이해하는 것에 국한시키면 모든 사람이 마침내 그렇게 제한된 상상력 위해 삶을 꾸려 나가게 되리라.

가장 현명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다.     


오랫동안 나는 일기를 써왔다. 이는 널리 읽히거나 편집자에게서 출판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도 없는 글이고, 여타 작가들처럼 나 역시 글을 쓴 노고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는 글을 쓰는 노고 자체가 보상이었다.     


새사람이 아니라 새 옷을 필요로 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옷만 바꿔 입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들이 옷을 비웃지 않고 성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성실한 삶의 자세 때문이다.     


우리 역시 자신과 천체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 없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새는 동굴 속에서 노래하지 않으며 비둘기는 새장 안에 갇혀서는 순수함을 간직하지 못한다.     


“인간 사회의 오류, 세속적인 위대함을 쫓느라 천상의 안락함은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 채프먼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더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저 구질구질한 생활필수품을 장만하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 평생 일해야 한다면,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연 집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해 본 적이 없는 듯싶다. 사람들은 남들처럼 집을 장만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쓸데없이 평생을 빈곤하게 산다.    

  

우선 아름다움으로 집을 단장하자는 뜻이다. 우리를 압도하는 집이 아니라 갑각류의 껍질과 그 주인의 관계처럼 우리의 삶과 혼연일체 할 수 있는 집을 짓자는 말이다.  

   

진정한 건축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시작해 점차 바깥으로 드러난다. 거주자 자신이 건축가가 되어 자신의 필요와 성품을 바탕으로 지은 건축의 아름다움, 겉보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주자의 꾸밈없는 진실성과 고상함에서 우러나온 건축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것이다. 그 외에 부수적으로 얻는 아름다움이 무엇이든 꾸밈없고 아름다운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게 결점이 있고 일관성이 없다고 해도 내 말의 진실성에는 변함이 없다.

진실을 말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0413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2)     


어젠 하루 종일 외부에 있느라 책 읽을 시간도 없었고, 잠도 3시간 정도밖에 못 자서 무척 피곤한 아침이지만, 그럼에도 습관처럼 5시가 좀 넘어서 일어나 준비하고 사무실로 나와 책을 펼치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수면이 부족하니 집중력은 오늘 확실히 떨어지네요. ㅎㅎ 다들 일찍 일어나시더라도 잠은 충분히 푹 주무셔야 합니다. ^^     


오늘 다시 펼친 <월든>은 또 한 번 지혜의 호수로 저를 데리고 갑니다. 다음에 한 번쯤은 꼭 낭독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그만큼 문장도 아름답고, 담겨있는 생각들도 우아합니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하나씩 설명해 주는 느낌입니다. 독서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도 참 좋고, 배움에 대한 그의 태도도 멋집니다. 오늘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메모해 둘 문장은 넘쳐나네요.     

우리 모임의 이름처럼 좋은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우주인 것 같습니다. 한동안 <월든>이라는 소로의 우주에서 그 평화로운 호수에 자주 놀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     




나는 가능한 한 이 세상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개개인은 자기 부모나 이웃이 간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갈 길을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느 곳에 자리 잡든 그곳에서 살리라. 그리하면 내 심성과 조화를 이루는 주변 경관이 조성될 것이다. 집이란 내가 자리 잡은 장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곳이 전원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하며, 깨어 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계적인 도움을 받고 깨어날 것이 아니라 단잠을 자는 사이에도 아침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아침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을 갖고 깨어나야 한다.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 무엇보다도 나를 고무시킨다.     


하루하루를 진실로 충만하게 사는 행위,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내가 숨을 거둘 때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를 선택할 때 조금만 심사숙고한다면 누구든 본질적으로 학생이자 관찰자가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 앉은자리에서 영적 세계를 두루 섭렵할 수 있다. 비전의 가르침이라는 술을 마시면 포도주 한잔에 도취되는 기쁨을 경험한다. - 미르 카마르 옷딘 마스트     


제대로 독서하는 행위, 즉 가치 있는 책을 읽고 그 참뜻을 파악하는 행위는 고결한 수련이며 현시대가 찬미하는 어떤 수련 과정보다도 철저하게 독자를 단련시킨다.    


독서를 제대로 하려면 운동선수처럼 평생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저자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책을 쓴 만큼 독자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이며 후대에 물려주기에 가장 적합한 유산이다.     


인류는 위대한 문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위대한 문인만이 그런 작품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사람들이 그 작품들을 읽는다고 해도, 글귀만 이해하는 데 그칠 뿐 작품 속에 담긴 보다 고차원적인 진리는 읽어내지 못한다.     


길에 떨어진 은화를 줍는 데는 누구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리라. 고대 최고의 현인들이 언급하고 후세대마다 그 가치를 인정한 주옥같은 지혜의 글이 있는데, 우리는 학교에서 입문서나 교과서 같이 쉬운 책을 배우고, 졸업하고 나서도 청소년이나 초보자 대상으로 쓰인 이야기책 <리틀 리딩>이나 뒤적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독서나 대화, 사고의 수준은 피그미족이나 난쟁이 키만큼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지혜가 있으면 관대함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육체적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정신적인 황폐함을 치유하는 데는 인색하다. 이제 학교를 졸업한 성인들이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출 때가 되었다.     


가리개의 틈새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빛줄기는, 가리개를 완전히 걷어버리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법이다.     


늘 깨어있음을 대체할만한 방법이나 훈련은 없다. 역사의 추이나 철학, 엄선된 시나 사회를 운영하는 최상의 방식 혹은 가장 존경받을 만한 삶의 행로도, 늘 깨어있는 자세로 볼 가치가 있는 대상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는 정신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독자가 될 것인가,
단순히 배우는 학생이 될 것인가,
아니면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당신의 운명을 읽고 눈앞에 있는 존재를 보고
미래로 계속 걸어 들어가라.


나는 여백이 많은 삶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동양인들이 말하는 명상과 무위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새들처럼 노래하는 대신 나의 충만한 행운에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푸리 인디언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가리키는 데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의미를 구분할 때는 뒤쪽을 가리켜 어제를, 앞쪽을 가리켜 내일을, 머리 위쪽을 가리켜 오늘을 나타낸다.     






#0417 월든 (3)     


소로가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마치 그의 영혼이 그가 말한 월든 호수처럼 맑고 투명하게 느껴집니다. 오랜 세월 동안 월든 호수를 자주 찾거나 호숫가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그 진가를 발견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 책 역시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고민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생각한 사람이어야 더 깊은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월든 호수가 어떤 풍경일지 궁금해서 이미지를 찾았는데 같이 공유해 봅니다.

보스턴에 가게 되면 꼭 한번 들려 보고 싶네요. ^^

    


     

그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보잘것없고 무지한 사람도 늘 자기만의 관점이 있고, 아무런 견해도 없는 척하지만 탁월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으며, 무지함이 흙탕물처럼 어둡고 혼탁할지는 몰라도 내면의 깊이는 마치 바닥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깊다고 알려진 월든 호수만큼이나 심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노동은 아주 단조롭고 고된 일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무익하지 않다. 육체노동에는 항구적인 교훈이 담겨 있으며 이를 통해 학자는 걸작을 수확한다.     


나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괭이에 기대어 밭 주위로 펼쳐지는 광경을 음미하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전원생황이 주는 무한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우리는 파종할 콩에는 온갖 관심을 쏟으면서 왜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데는 무관심한가? 우리는 앞서 언급한 그런 미덕이 내면에 뿌리내리고 성장한 사람을 보면 흐뭇해지고 기뻐해야 한다.    

 

월든 호수를 오랜 세월 동안 자주 찾았거나 호숫가에서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그 진가를 발견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호수는 놀라울 정도로 깊고 말아서 특별히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이 호수들은 너무도 순수해서 시장 가치를 따질 수 없다. 호수는 조금도 오염되지 않았다. 우리의 삶보다 얼마나 아름답고 우리의 성품보다 얼마나 투명한가!    

 

사람들은 자연 속에 살면서도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이는 없다.     


그는 하루를 차와 커피, 버터, 우유, 고기를 곁들인 식사로 시작했으므로,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되게 일해야 했고 그러고 나면 과로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많이 먹어야 했다. 게다가 버는 만큼 써야 했고, 그럼에도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을 낭비했으므로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은 삶을 산다고 이야기했다.   

  

내 안에서 보다 고차원적이고 영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발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두 가지 본능을 모두 숭배한다.     





#0419 월든 (4)   

  

내일 아침 독서모임이라 오늘 <월든>을 끝까지 마저 읽었습니다. 한번 읽고 완독이라 말할 수 없는 책이라, 두고두고 여러 번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때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때론 궁금하지 않은 사사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이 책이 왜 200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고전인지 알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좋았던 부분은 다른 번역서나 원문을 찾아서 같이 읽어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맺음말은 그 자체로 너무나 훌륭한 글이라, 온통 다 밑줄을 치고 페이지마다 접어둬야 했네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는 내일 아침 독서모임시간에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언젠가 끌림이 있을 때 꼭 한번 월든 호수에서 나눠주는 이 기막힌 지혜를 만나서 <월든>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 봅니다.    

 



처음에는 낚시꾼으로, 그다음에는 사냥꾼으로 숲을 찾지만 마침내 자기 내면에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 싹트면, 시인이든 자연주의자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총과 낚싯대를 손에서 내려놓는다.

    

자신의 고결한 성품이나 시적인 자질을 최성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육식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소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


이는 곤충학자들도 인정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커비와 스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곤충들은 소화기관을 완벽하게 갖춘 성충이라도 그 기관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곤충들은 성충이 되면 유충 때보다 훨씬 적은 양의 음식물을 섭취한다. 왕성한 식용을 보이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거나 탐욕스러운 구더기가 파리가 되면 꿀이나 다른 액체 한두 방울로 만족한다.”    

 

식탐이 강한 사람은 애벌레 상태에 머무른 인간이다.     


나는 늘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 음주의 정도에는 한계가 없다. 현명한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음료는 물이라고 믿는다.


차나 커피의 유혹을 느낄 때 얼마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음악도 사람을 도취시키는 힘이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그리스와 로마를 파멸시켰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취하는 방법은 수업이 많지만 자기가 숨 쉬는 공기에 도취되길 바라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증자가 말했다.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면,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느니라.”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기보다는 그 음식을 먹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또한 음식의 양이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음식의 감각적인 풍미에 몰입하는 태도가 문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육신을 지탱하고 영적인 삶의 영감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갉아먹을 벌레에게 주는 영양분이 될 때가 문제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차이점이다.
소인은 그것을 쉽게 잃어버리지만 군자는 소중히 간직한다.”


관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은 모두 같다. 모든 정결함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먹고 마시고 더불어 살고 수면을 취하는 행위는 모두 같은 욕망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 행위만 봐도 그 사람이 얼마나 관능적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신체라고 불리는 신전을 짓는 이다. 누구든 자신이 숭배하는 신을 위해 그 신전을 순수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성 들여 지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조각가이자 화가이고, 작품을 만드는 데 쓰는 재료는 우리 자신의 살과 피와 뼈이다. 고결함은 잘 다듬어지고 채색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며, 비천함과 관능적 욕망은 인간을 야수처럼 만든다.     


평온함을 보지 못하는 이는 눈이 멀었다.  

 

“인간은 환영하나 동물은 사정이오. 여유롭고 고요한 마음을 지난 사람, 진심으로 옳은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들어오시오.”     


모든 생명의 안식처인 자연이 동트고 있었고, 자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넓은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자연과 여명, 질문의 해답은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눈에는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일맥상통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법칙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더 경이롭다.     


내가 호수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인간의 윤리에도 적용된다. 두 개의 직경이 이루는 법칙을 통해 우리는 은하계의 태양과 인간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상적인 행동들과 마음속의 구석진 만(灣) 그리고 그 만의 입구를 드나드는 삶의 물결들을 모두 합해 길이와 폭을 따라 선을 그리면 그 선들이 만나는 지점이 그의 성품이 나타내는 기슭의 지형이나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만 알아도 그의 깊은 속마음과 감춰진 참모습을 헤아리리라.     


아침이면 나는 <바가바드기타>의 경이로운 우주 진화론적 철학에 나의 지성을 흠뻑 담근다. <바가바드기타>가 쓰인 이후로 신(神)의 해(=360년)로 따져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 경전을 우리 시대와 비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시대의 문학은 무척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나를 숲으로 이끈 또 하나의 매력은 숲 속에 살면 여유롭게 봄이 오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우주 안에 벗 하나 없지만 아침과 창공의 정기를 홀로 즐기는 것으로 족해 보였다. 이 새는 자신은 외롭지 않았지만 자기 날개 밑에 있는 대지 전체를 외롭게 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이든 탐험하고 배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만물은 범접하지 못할 신비를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한계를 뛰어넘고, 우리가 접근하지 못할 곳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목격해야 한다. 썩은 고기는 혐오스럽지만 그 고기를 먹고 건강을 유지하고 기운을 얻는 독수리를 보면 기운이 솟는다.     


너의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라. 그러면 너의 마음속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천 개의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리라. 그 지역들을 여행하고 자신의 세계에 통달한 전문가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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