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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반전의 옥상 정원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정원이 필요하다

by 변대원

제가 일하는 사무실은 12층이라 주변에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다 창문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특히 동쪽으로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스카이뷰가 제법 그럴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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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새벽독서모임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도착하면 요즘은 일출시간이 빨라서 이미 동쪽 창으로 햇살이 복도 중간까지 멀리 비추고 있는 장면을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잠시 갓 솟아오른 태양을 바라보며 아침햇살을 만끽하곤 합니다. 물론 잠깐입니다. 10초 남짓? 길어야 20초 정도 될까요? (워낙에 잘 타는 피부라 안 그래도 많이 그을린 얼굴이 더 탈까 봐 오래는 못 즐깁니다. 후후)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 우연히 바로 근처 골목에 있는 작은 상가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건물 옥상에 주변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은 정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가건물 옥상이다 보니 정원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지만, 영동시장 골목이라 술집과 해물탕집이 있는 5층짜리 가게 건물 옥상에 나무가 무성한 20평은 넘어 보이는 정원을 꾸며놓았다는 사실이 뭔가 큰 반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곳이고, 작은 숲처럼 꾸며놓은 공간 옆으로는 1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다양한 장독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해당 건물 5층에 건물주가 상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누군가 그 건물 옥상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득 '내 마음에도 저런 정원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 혼자 올라와 잠시 쉴 수 있고, 내가 심어놓은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는 그런 공간말이죠.

또 하루 중 반드시 나만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매일 새벽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만, 조금 더 '현재의 나'에 집중하고 감사할 수 있는 충만한 시간을 늘리고 싶습니다.


먹고 노는 유흥의 거리에 그런 가게들이 입점해 있는 건물 옥상에 제법 풍성히 우거진 정원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일상에서 잘살고 있는 순간보다 나도 모르게 허비하고 흘러가버리는 시간이 더 많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요.

그럼에도 내가 나의 내면에 정원을 가꾸고, 그곳을 중심으로 범위를 점점 넓혀갈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지금 내 마음속은 어떤 풍경인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여러 풍경들 속에서 나만의 고즈넉한 정원이 그려집니다.

비 온 뒤 하늘처럼 맑고 푸르며, 6월의 햇살을 받은 나뭇잎처럼 반짝이는 공간을 가꿔나가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그런 공간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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